클로버필드 / Cloverfield

영화는 무언가 큰 사고가 일어난 장소에서 회수된 비디오 테잎을 재생하면서 시작된다. 4월 27일의 아침을 알리는 비디오의 처음부분은 롭(마이클 스탈-데이빗)이라는 청년과 그의 연인인듯한 베스(오데뜨 유스트만)의 행복한 모습을 담고 있다. 테잎은 갑자기 시간을 건너 뛰어 5월 22일을 가리킨다. 롭의 동생 제이슨과 그의 여자친구 릴리는 롭을 위한 송별파티를 준비중이다. 제이슨이 촬영하던 캠코더는 롭의 친구 허드(T.J. 밀러)에게 쥐어지고 그는 파티 참석자들이 일본지사로 발령받아 떠나는 롭에게 남기는 인사말들을 기록한다. 롭이 도착하고 파티는 계속되지만 연이어 베스가 다른 남자와 함께 도착하면서 두 사람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진다. 비디오에 기록되지 않은 약 한달 간의 기간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드는 자신의 손에 든 캠코더로 본래의 임무는 제쳐두고 롭과 베스의 모습을 담기 시작한다.

 


허드의 왕성한 호기심와 넓은 오지랖이 파티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거대한 폭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린다. 롭과 친구들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하지만 부서진 건물의 파편들이 파티장을 덮치는 바람에 모두들 건물을 벗어나기 바쁘다. 테러의 공포가 다시금 엄습하는 이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려는 허드 앞에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가 떨어진다. 저 멀리 건물 사이로 움직이는 무언가가 롭 일행의 눈에 포착된다. 뉴욕은 한 순간에 지옥이 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스타나 훌륭한 각본보다 시대의 흐름을 잘 포착한 연출이 때로는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 <클로버필드>가 증명한다. 또한 <클로버필드>는 헐리웃이 911로부터 촉발된 미국인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훌륭한 오락물로 둔갑시키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영화는 전쟁 혹은 테러의 상황을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뉴스 보도의 이미지에 휴대기기의 발달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UCC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허구성 짙은 영화 같지 않은 현장성을 얻어낸다. 여기에 맨해튼을 공격하는 미지의 존재를 영화가 일체 설명해 주지 않음으로써 괴수영화의 요소 외에도 음모론의 가능성마저 영화 안에 심어놓고 있다.

<클로버필드>가 영리해 보이는 것은 형식으로부터 촉발된 생동감을 한껏 이용해 이 알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도, 한편으론 이 현장감이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 지점에 멈춰 서게 한다는 점이다. 즉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혀진 것은 아무도 없는데, 관객 또한 굳이 그 호기심을 발전시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캠코더를 들고 다니는 인물들이 실제처럼 현장을 누비는 행위 그 자체일 뿐이며, 이 괴수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로 남는다.


이 한편의 가짜 다큐멘터리를 더욱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영화가 마련해놓은 설정이나 장치들도 영리하게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클로버필드>는 러닝타임 전체가 캠코더로 녹화된 테잎의 내용으로, 관객에게 이야기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이 캠코더를 등장인물의 손에 계속 들려있게 만드느냐가 하나의 관건이 된다. 상식적으로 괴생물체의 도시 파괴 같은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에서 행동의 제약이 따르는 이 휴대장치를 줄곧 가지고 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는 실질적 주인공인 롭에게 허드같은 친구를 붙여놓는다. 허드는 매사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격에 친구들로부터 암묵적인 따돌림을 받는 인물로, 특유의 호기심과 엉뚱한 사명감에 캠코더를 놓지 않는 캐릭터라 해도 수긍이 가기 때문이다. 상황과 맞지 않는 대사로 함께 행동하는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는 그가 결과적으론 자신의 손에 든 캠코더 안에 관객을 완전히 가둬놓은 셈이 되었다.

여기에 중간중간 촬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차되는 과거의 녹화테잎을 통해, 재앙영화이면서도 하나의 러브스토리이기도 한 <클로버필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롭과 베스의 행복한 하루가 담긴 이전의 테잎은 거대한 괴물이 도시를 짓밟는 지옥의 기록에 지워지고 만다. 재앙영화, 괴수영화, 멜로영화의 요소를 모두 ‘짬뽕’시킨 <클로버필드>는 한없이 고리타분한 스토리를 연출의 방식으로 극복한 셈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스토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물론 개인의 차는 있겠지만 <클로버필드>는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데 능하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고, 설명된 것 없는 상황에서 이만한 몰입도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곤 위험의 실체인 괴수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실질적인 제작비 절감 효과와 함께 공포의 실체를 장막 안에 감춰두는 것이 두려움과 상상력을 유발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라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가령 <고질라>의 경우 관객에게 거대 생물체의 몸집을 마음껏 훑어 내려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만 결과는 재앙에 가까웠으니까.

<클로버필드>는 관객을 위해 딱 한번 정면의 괴물을 바라보게 만든다. 내 생각엔 이것조차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는 캠코더의 사각지대에서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 괴물의 신체부위를 상상할 때 훨씬 더 큰 공포감(혹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알 수 없는 생물체를 바로 마주하는 바로 그 장면만 놓고 보자면, 다른 영화에 비해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는 괴물의 디자인이나 컴퓨터 그래픽의 퀄리티, 그리고 갑자기 비약해버린 스토리상의 문제점(롭 일행의 슈퍼맨 같은 생명력과 괴물의 홍길동 버금가는 순간이동 능력) 때문에 별 다른 임팩트를 던져주진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말하건대, <클로버필드>에선 무엇보다 허드의 손에 달린 캠코더가 중요한 것이다. 쉴새 없이 흔들리며 움직이는 카메라 안에서 관객은 뻔한 거짓말의 현장감에 놀아나거나 빠져든다. 괴물의 모습을 보건 말건 관객이 테잎 안에 갇혀있다는 사실만이 유효하다. 영화의 모든 상황을 일관된 하나의 설명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은 관객의 주의집중을 유도하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더욱이 그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항을 그럴듯하게 포착해낸 것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클로버필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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