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 Iron Man

영화산업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코믹스 속 슈퍼히어로들을 스크린위로 끌어내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만화적 연출들이 이제는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래 들어 DC와 마블로 대표되는 미국 히어로들이 대거 은막을 찢고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매년 어떤 새로운 영웅이 영화로 재해석 되어 나타날지 기다리는 것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무척 설레는 일이다. 존 파브로의 <아이언맨>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초능력이 아닌(비현실적이라는 면에서 사실상 초능력이라 봐도 무방하겠지만) 지능과 현실적 재력으로 승부하는 히어로가 하나 더 영화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여기에 더해, 마치 <태양의 제국> 시절의 크리스찬 베일이 잘 자라서 멋진 블록버스터의 히어로로 자리매김한 모습이 반가운 것처럼, 때마다 골치 아픈 문제로 팬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드디어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영화의 주연으로 사뿐히 안착한 모습 또한 그러하다. 결론적으로 <아이언맨>은 어느 속편 영화처럼 캐릭터간의 고도의 심리전과 무거운 철학적 주제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런 대단한 영화로 여겨지진 않더라도 러닝타임 내내 영화의 흐름에 기분 좋게 몸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영화임은 분명하다.

 


물론 <아이언맨>을 완벽하게 제어된 걸작 영화라고 칭하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작품 안의 몇몇 설정 때문인데, 이를테면 여기엔 토니 스타크가 어째서 아이언맨 수트를 입게 되어 있는지 설명되어 있긴 하지만 그의 급격한 심리적 변화가 너무 비약적으로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공할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업체의 CEO가 자신들의 무기가 적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에 순수하게 분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넌센스다. 군수산업의 지속이 결국 끝없는 전쟁의 발발과 그에 따른 위기상황을 그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고 봤을 때, 토니 스타크의 순진한 생각은 그를 본래 선한 심장을 가진 히어로로 만들기 위한 단순한 발판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 모든 죄를 오베디아에게 덮어씌우다니. 현실이라면 정부에 로비도 함께 벌이고 테러리스트들을 위시로 한 주요 밀매 고객들에게도 같이 얼굴을 들이밀 동업자들이 말이다.


결국 <아이언맨>에서 정치적 함의를 끌어내는 일은 조금 피곤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보다도 이 영화가 적극적인 국가 홍보 영화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도 하는 편이 오히려 속 편하다. 생활고에 찌든 피터 파커가 매 시리즈마다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성조기를 펄럭이는 와중에도 토니 스타크는 과감히 무기산업에서 손을 떼겠노라 선언한다. 그는 영리하게도 미국의 실질적 권위는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단독으로 분쟁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판타지인 영화와 현실인식 사이에서 적절히 줄타기 하는 <아이언맨>은 주인공이 단호히 결심을 내린 후부터 슈퍼히어로의 그 날렵한 위용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다른 히어로들의 탄생과 달리 아이언맨의 생성과 진화과정은 별다른 줄거리 없이도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끈다. 이쯤에서 우리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묘사해내는 헐리웃의 테크놀로지에 또 한번 속아넘어간다.

영웅의 탄생과정에 큰 비중을 둔 <아이언맨>이 액션의 강도가 조금 약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 흥행여부에 관련된 일이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속편에서 그 한을 풀 것이라는 기대감을 충분히 갖게 한다. 여기에 더해, <아이언맨>은 박쥐모양의 망토를 걸친 사내처럼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온 도시를 거미줄로 장식해버리는 가난한 고학생처럼 후줄근하지도 않을뿐더러, 안경 하나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빨간 팬티 외계인을 따라 어리뜩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적당히 진지하고 다분히 유쾌한 사내 토니 스타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로써 헐리웃은 매년 여름이면 기다려질, 볼만한 시리즈를 하나 더 만들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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