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헐크 / The Incredible Hulk

루이 레테리에의 <인크레더블 헐크>는 어찌 보면 일종의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 주자와 같다. 이 영화가 이안의 <헐크>의 속편이 아니라고 아무리 몸서리치며 항변해봤자 이미 우리는 이 녹색괴물이 지금의 테크놀로지와 결합되면 어떤 비주얼을 보여줄지 웬만큼 예상이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관객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굳이 설명해 보자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전범으로 남아있는 TV 시리즈로부터 바로 건너뛰는 작품이 아니라, 중간에 불과 5년의 시간차를 가진 이안의 <헐크>를 쌍둥이 형제로 둔, 그래서 그와의 비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동시대의 결과물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믹스에서 탄생해 TV를 거쳐 마침내 스크린에서 한층 진화된 놀라운 화면을 보게 되리라는 관객의 바람은 한풀 꺾인 것이 되고 만다. 이를테면 영화 기술의 발전을 과시하며 예고편을 통해 헐크를 감질나게 보여주는 수법 같은 것은 <헐크>가 이미 써먹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공교롭게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쌍둥이 형 때문에 헐크는 편하게 다음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관객에게 지루한 동어반복의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브루스 배너(에드워드 노튼)가 헐크가 되는 과정 또한 주요장면들과 신문기사 혹은 각종 서류를 짧게 보여주며 단순하게 묘사된다. 이후의 주된 스토리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에서 형성되는 긴장감에 킹콩을 연상시키는 괴물과 미녀의 안타까운 애정전선을 혼합한 형태가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썬더볼트(윌리엄 허트) 장군이 브루스 배너를 쫓는 과정이 어떤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관계는 단지 헐크와 최종 보스인 어보미네이션을 만나게 할 전초전으로 느껴질 뿐으로, 그것은 이 추격전의 설정이나 연출이 지극히 평범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루스 배너, 아니 헐크와 베티 로스(리브 타일러)의 러브스토리도 마찬가지로, 비교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피터 잭슨이 세련되게 다시 그린 킹콩과 앤 대로우의 애틋한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 느낌도 없이 지나치고 만다. 그저 그들의 사랑이야기 중간중간 삽입된 싱거운 유머 덕분에 이야기가 지나치게 심각하게 변질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그저 그런 스토리라인을 뒤로 놓고 보면, 이 새로운 녹색괴물은 이안의 <헐크>에 비해 보다 ‘강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인크레더블 헐크>는 무엇보다 헐크의 액션에 초점을 맞춘다. 루이 레테리에의 녹색 사나이는 이안의 그것보다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비된 듯 더 강렬한 근육과 더 사나운 표정을 가졌다. 다소 귀여운 구석이 있었던 이안의 헐크에 비해 진정 ‘괴물’이 된 느낌이다. 어떻게든 이 비운의 괴물로부터 이안의 헐크에 비해 다른 점이 느껴지도록 만들려는 이들의 의도는 액션의 강도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주인공은 이안이 그려낸 녹색괴물처럼 부드러운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아한 동작이 아니라 근육이 모두 터져나갈 듯 쥐어짜내는 힘겨운 액션을 선사한다. 말하자면 <인크레더블 헐크>의 목적은 어떤 잘 짜인 스토리 대신에 이안의 <헐크>가 간과해버린 이 녹색괴물의 놀라운 신체적 능력을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말하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액션영화, 혹은 슈퍼히어로영화로서 매우 훌륭한 결과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화가 두 괴물의 대결을 비롯한 주요 액션씬에서 보여주는 화면들이 결코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영화의 구성 자체가 너무 평이한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짧은 시간차를 두고 같은 출발점에 서 있던 <헐크>가 또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만약 <인크레더블 헐크>가 이안의 <헐크>를 잇는 속편으로 기획되었다면 영화가 쓸데없는 부연설명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본격적인 액션에 집중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여기에 관객들은 제어 불가능한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을 조절할 줄 하는 진짜 ‘슈퍼히어로’를 볼 수 있었을 테니까. 보아하니 <인크레더블 헐크>의 흥행성적이 기대에 못 미친 듯한데, 과연 또 한 번의 시작을 더 기다려야만 할지, 아니면 이제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한 헐크를 비로소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인크레더블 헐크>에 대한 개인적인 호부와 상관없이 제발 후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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