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 Mirrors

* 스포일러 포함

때때로 영화 전체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호감을 갖게 되는 영화가 있다. 이를테면 스토리는 별로였는데 뇌리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을 가진 영화라든지, 흐지부지한 결말까지 다 봤지만 인상적인 오프닝 덕에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 또는 제작비에 허덕인 흔적이 역력한 화면 속에서도 가슴을 강하게 울리는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들 역시 이런 사례가 되겠다. 하긴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영화들이 실망스런 부분과 만족스런 일부가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영화에서든지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중 어느 쪽의 비율이 더 큰지, 더 강한지에 따라 전체적인 감상의 갈래가 정해지는 것뿐이다. 영화 <미러>는 과연 어떤 감상을 낳게 될까.


형사 재직시절 실수로 동료를 죽인 벤 카슨은 직장을 잃음은 물론, 사고로 인해 얻은 우울증으로 가족과의 관계조차 회복하기 힘들만큼 악화된 외로운 사나이다. 안정제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그가 힘겹게 얻은 새로운 직장은 불타버린 오래된 백화점 건물의 야간 경비원. 행방불명 된 전임자를 대신해 이 스산한 장소의 밤을 책임지게 된다. 화재 당시의 고통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모습 그 자체도 오한을 불러 일으키지만, 벤이 순찰을 돌 때마다 거울을 통해 그의 앞에 펼쳐지는 환상이 그를 더욱 공포스럽게 한다. 마침내 벤은 건물의 거울들이 말하는 메시지를 포착한다. 아직 잃지 않은 형사시절의 감각과 인맥을 활용해 건물의 비밀을 파헤치는 벤. 한편 행방이 묘연했던 벤의 전임자는 시체로 발견된다. 이를 계기로 벤은 거울이 요구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자신의 주변인물들이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거울이 던져주는 수수께끼 같은 단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거울 속의 무언가는 벤의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위협으로 다가가는데…

 


과거의 일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병약한 심리상태의 주인공, 놀랠 작정을 하고 튀어나오는 소름 끼치는 형상들, 음산한 배경음악. <미러>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으레 첨가되는 이런 요소들에다, <쏘우> 시리즈를 비롯 최근 헐리웃 공포영화들이 경쟁하듯 보여주는 적나라한 신체훼손 장면을 덧붙인다. 게다가 이런 장면들은 예를 들어 <플래닛 테러>처럼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모양새가 아니라, 가급적 리얼리티를 살린 채로 표현되어 있어, 때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공포감과 불쾌감을 혼동할 때도 있다. <미러>는 공포영화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방식으로 드러낸다.


어쩌면 <미러>는 거울 속의 악령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비록 리메이크이긴 하지만)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오컬트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내면의 자아와 드러낸 겉모습으로 나눈다면 거울만큼 이것을 효과적으로 버무려낼 수 있는 소재는 없을 테니까. 말하자면 관객은 거울 속에 비친 나는 과연 나인가라는 언어유희가 공포와 어떻게 결합될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러>는 영화로서 뭔가 더 커다란 목표가 있는 듯 행동하기보다는, 거울을 공포영화의 소재로서 이용할 때의 그 출발점에 멈춰 서서 단편적인 공포감만을 유발하는데 주력한다. 다시 말하면 이 영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한밤중 혼자 거울보기를 꺼려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반응일 것이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미러>는 그만한 목표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공포영화 <미러>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첫 문단에서 영화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을 이야기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미러>의 결말이 영화의 다른 단점들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 정도로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 거울 곳곳에 찍혀있는 사람의 손자국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복선인지 밝혀지는 영화의 엔딩은, 같은 공간, 동일 시간 속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나눠버린 <사일런트 힐>을 연상시킨다. 사건이 모두 순조롭게 해결되었지만 주인공은 영원히 해피엔딩과 평행선을 이룰 수 밖에 없는 상황. 엔딩에서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악령의 모습을 재차 보여주거나, ‘나 죽은 줄 알았지? 실은 아니지롱~’ 식의 뻔히 예상되는 놀램으로 공포영화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보다는 한층 흥미로운 결말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 영원히 갇혀있는 주인공을 상상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공포감을 던져주진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일종의 쓸쓸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때론 이러한 결말을 곱씹어볼 때가 더욱 공포스러울 수 있다.


결과적으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거울 속으로>를 보지 못했다. 원작과의 피할 수 없는 비교행위는 일찌감치 우회한 셈이다. 그래서 각색된 모양새가 어떤 실망을 낳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원작과 리메이크작품과의 관계를 뒤로하고 그저 헐리웃 공포영화라는 정체성만으로 봤을 때, <미러>를 뒤늦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키퍼 서덜랜드의 잘못된 선택이라고 결론 내 버리기엔 좀 아쉽다.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흐름이나, 시종일관 관객을 심리적으로 옥죄는데 주력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액션영화로 탈바꿈하는 부분, 또는 흥미로운 소재의 일차원적인 소비 행태만으로도 영화에 대해 실소를 머금을 수 있겠지만, 때로는 인상적인 엔딩이 흐지부지 지나친 앞부분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이 소비된 러닝타임을 후회하지 않게 만든다면 영화로서도 관객으로서도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 적어도 내게 <미러>는 그렇게 최종적으로 호감을 간직한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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