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 잡 / The Bank Job

사실 수많은 은행강도 이야기 중에서 <뱅크 잡>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이유는 없다. 소재가 실화로부터 나왔다는 것 외에는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일 독특한 요소도 거의 없다. 그러나 <뱅크 잡>은 군말 없이 잘 짜인 장면간의 이음새와 다소 냉혹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들로 인해 분명 호감을 가지게 되는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T-Rex의 흥겨운 노래 “Get It On”이 극중 분위기를 미리 점지 하듯 <뱅크 잡>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영화다.

 

 

주인공 테리(제이슨 스테이덤)로 이야기하자면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하면서 비록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곤란한 처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고민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말하자면 그를 비롯한 영화의 대다수 등장인물들은 낙천적인 영화의 분위기 안에서 성공을 의심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인생 뭐 있나, 은행 한번 털고 한 몫 잡으면 만사형통.
 


이들이 마음먹은 범죄의 성공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모습은 때로 코미디처럼 가벼운 터치로 묘사되고, 또한 시종일관 빠르고 쉴 틈 없는 호흡으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관객 역시 큰 중압감 없이 이 영화에 몸을 실을 수 있다. <뱅크 잡>은 영화의 중반 이후 캐릭터간의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범죄세계의 잔인함과 정치권의 너저분함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관객은 테리를 위시한 주인공들의 행위가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 상상하진 않는다. 영화는 단지 우리로 하여금 급박하게 변하는 사건의 추이에 집중하게 만든다. 즉 <뱅크 잡>은 영화의 줄기를 통째로 뒤흔드는 방법이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의 반전 같은 것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는 것이다.
 


사건 관련 자료를 들춰보지 않는 이상 영화의 어디까지가 실화와 쏙 닮아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제작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말하자면 정말 영화 같은 현실이 있긴 있나 보다.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허구인 영화에 있어서 관객을 끌어들일 강력한 미끼가 된다. 원래 현실 같은 거짓말보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 더 크게 먹히는 법이니까. <뱅크 잡>은 유쾌한 범죄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조작과 위선이 난무하는 영국 정치, 범죄의 세계를 그럴듯하게 보여준다. 실화와 허구를 적절히 잘 버무린 시나리오에 로저 도널드슨의 노련한 연출이 빛을 발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다. 제이슨 스테이덤이라는 액션 스타가 있지만 결코 스타파워에 의존하지 않는 모양새도 호감을 더한다. <뱅크 잡>은 강렬한 인상은 전해주지 않아도 적어도 러닝타임 동안은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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