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 Midnight Meat Train

이 밤이 지나면 그 흔적은 웬만큼 지울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비린 내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피의 바다. 죽음에 가까이 온 살덩어리들이 손잡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인간 정육점의 풍경.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 지옥의 풍경을 마치 사이보그처럼 유연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마호가니(비니 존스)의 굳은 몸이 지키고 서 있다. 그리고 비밀리에 유지되고 있는 그들만의 세계에 사진작가 레온(브래들리 쿠퍼)이 끼어든다. 폭로되지 않은 진실에 대한 갈망 보다 더 큰 알 수 없는 유혹이 그를 이 지하철로 끌고 와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고 간다. 마치 자석처럼 이끌려 지하철 승강장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주인공. 마호가니의 무지막지한 갈고리와 망치질조차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 레온은 왜 점점 이곳으로 이끌려오는 것일까.

 


상업영화의 역사 안에서 구분, 발전된 장르는 간혹 관객으로 하여금 미리 일정의 태도를 준비하게 만든다. 액션영화를 보면서 시원한 폭발장면을 기다린다든지, 멜로드라마를 마주하고 손수건을 준비한다든지 하는 것들. 장르의 분류 안에서라면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한밤에 불을 끄고 침을 꿀꺽 삼킨 채, 언제든지 재빠르게 눈을 가릴 수 있는 손을 얼굴 주변에 대기시켜야만 할 것 같은 영화다. 적어도 ‘공포영화’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그렇다. 그러나 관객의 머리 안에서 이미 습관화된 특정 장르에 대한 사전감각은 때때로 영화가 그 기대에 다소 빗나간 방향으로 나아갈 때 실망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지하철 한 칸을 온통 피로 물들이는, 인간 정육점 주인(결국 하수인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 카리스마로서는) 마호가니의 캐릭터다. 제물이 되는 익명의 도시인들이 그의 노련한 손놀림에 의해 두개골이 벌어지거나 내장이 튀어나온 채, 혹은 사지가 절단되어 전시된다. 가히 ‘피의 향연’이라는 미적 수사에 어울릴만한 광경이지만, 사실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성적으로 구분하는데 익숙해진 지금의 관객이라면 그다지 독특한 느낌을 받긴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이나 산산이 파괴되는 육체보다 은근슬쩍 암시되는 죽음의 예고 같은 것에 더욱 공포감을 느끼는 관객의 경우라면 더욱,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을 무서운 영화로 분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그건 앞에 말한 것처럼 이 영화를 공포영화라는 좁은 카테고리 안에 묶어두고 그에 따라 규정된 기대심리를 가질 때의 이야기다. 사실 마호가니가 지배하는 지하철 안의 세계는 어떤 무시무시한 간접경험을 전한다기보다 하나의 어두컴컴한 환상으로 다가온다. 말하자면 놀라 자빠질 공포보다는 일종의 그로테스크한 신비감이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이 관객에게 던져줄 수 있는 가장 큰 인상이다.

 

 

이 영화가 가진 몇 가지 정서들, 즉 어두운 도심의 에너지를 함축하는 지하세계의 존재, 또는 죽음에 미혹되는 인간의 심리,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의 정황 등을 고려해보면 이 영화는 차라리 음산한 판타지에 가깝다. 그 안에서 관객은 자신이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소설로부터 얻은 영감을 재발견하거나 혹은 기묘한 유머가 담긴 도살장의 미묘한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해야 한다.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은 사방에 피가 튀고 사지절단의 잔인한 미학을 추구하는 와중에도 드문드문 유머를 심어놓는다. 그것은 때로 실제 격투기선수인 퀸튼 잭슨을 출연시켜 마호가니와 일대일 대결을 벌이게 만드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혹은 신체가 파괴되는 순간에 은근히 드리워진 악취미적인 시선처럼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장르의 관습에 강하게 묶인 관객들, 즉 호러무비라는 카테고리의 영화라면 반드시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를 선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겐 이 야밤의 열차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있다. 솔직히 말하건대 내가 그렇다. 혹시 원작을 미리 접하지 않은 탓일까. 그러나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사실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는데 하나의 핸디캡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화자체를 바라보는 눈까지 바꿔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생한 효과음을 배경으로 썰리는 살점과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핏물에 순수하게 열광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거의 종교적인 색채까지 풍기는 영화의 결말이 쌓아놓은 시체더미만큼이나 허무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지하세계의 대리인이자 능숙한 인간고기 사냥꾼인 마호가니에 더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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