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터 / The Transporter

숨가쁜 사건 전의 침묵의 시간을 가리키듯 긴장감 가득한 음악을 배경으로 한 대의 카메라가 조용히 지하주차장을 떠돈다.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BMW를 훑어 내려가던 화면은 운전석에 앉아있는 단단한 표정의 사내를 잡는다. 그는 어떤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눈부신 BMW에 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바퀴가 움직인다. 사내의 이름은 프랭크. 은퇴한 특수부대 소속 군인이며 지금은 비밀스러운 의뢰인들의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물건의 종류는 무관, 고객의 이름도 알 필요 없다. 정확한 무게와 철저한 시간준수, 그리고 시끄럽지 않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그만의 엄격한 규칙이 필요한 뿐이다.

갑작스레 슈퍼히어로들이 득세하는 바람에 국가, 혹은 지구단위로 정의를 수호하는 자 이외의 작은 영웅들은 모두 그 힘을 못 쓰게 되어버렸다. 지역사회를 지켜줄 소규모 방범대원들이 막강한 군대에 의해 스크린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셈이랄까. 이를테면 80년대 거짓말 같은 생존력을 과시하며 골치 아픈 악당들을 시원하게 소탕했던 마틴 릭스나 존 맥클레인의 직계가 될, 현실성을 가장한 슈퍼마초들을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트랜스포터>의 프랭크(제이슨 스테이덤)는 얼핏 그들을 생각나게 한다. 초능력 없이도 초인처럼 보였던 액션스타들. 일대 다수의 대결에도 능하고 높은 건물에서도 두려움 없이 뛰어내릴 수 있는 담이 그에겐 있다. 물론 악당들을 싹쓸이 하는 자동청소 기능은 기본옵션.

 


뒤늦게 <트랜스포터>를 찾아본 것은 순전히 제이슨 스테이덤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영화를 통해 대사를 톡톡 던지듯 무관심한 그의 표정연기에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뱅크 잡><데스 레이스>로 인해 촉발된 한 배우에 대한 관심이 이 프랜차이즈 영화를 들춰보게 만든 보다 정확한 동기일 것이다.

 

 

단순한 액션영화의 전형을 따르는 <트랜스포터>는 논리적인 두뇌로 보기엔 문제가 많은 영화다. 사건은 인과관계의 실마리 없이 전개되고 들러리 여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보는 이를 적잖이 당황하게 한다. 그것이 꼭 서기의 어색해 보이는 영어대사 연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녀는 충실히 귀여웠고 의외로 섹시했다. 이 정도면 됐지 뭐. 악당들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며 때문에 무수한 총알만 낭비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프랭크는 총알의 궤도 따위 미리 계산하지 않아도 피할 수 있는, 네오도 울고 갈 생존의 능력을 체득하고 있다.

이외에도 <트랜스포터> 안엔 여기 저기 산재한 문제점이 많지만, 영화는 단 하나의 조건으로 이 모든 것을 보상하려 노력한다. 그것은 운동선수 출신이자 갖가지 격투기로 다져진 제이슨 스테이덤의 단단한 몸과 시원시원한 액션. 큰 체구에 굼뜨기만 할 거라는 서양인을 바라보는 보통의 시선을 비웃기라도 하듯 프랭크의 동작은 매우 재빠르다. 코리 유엔(원규)의 연출과 피에르 모렐의 촬영은 이를 더욱 강조한다. 프랭크는 어떠한 체력저하 없이 수 십분 간 셀 수 없는 적들을 상대해낸다. 제이슨 스테이덤의 액션연기는 정확한 합에 의한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액션을 스크린을 통해 감상하길 기대해온 관객들에게 반가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감독의 영향인지 홍콩 영화 같은 특유의 과장과 캐릭터의 비장함이 조금은 간지러운(혹은 덜 익숙한) 프랑스식 유머(이게 정확하지 않다면 그저 미국식이 아닌)와 혼재되어 있는 <트랜스포터>는 뇌 안의 사고장치를 잠시 꺼내두고 아드레날린 발생장치만을 활성화시킬 때에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넉넉한 시간의 주말 저녁쯤, 편안히 소파에 앉아 감자칩을 부숴가며 DVD로 보기에 적당한 영화랄까.

 

2008/12/25 - 트랜스포터 엑스트림 / The Transporter 2
2009/01/09 - 트랜스포터: 라스트 미션 / Transporte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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