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 - Native Tongue (1993)

이 블로그의 ‘GUITAR’ 카테고리를 둘러본 방문객이라면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꽤 오래 전에 잠깐 기타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Richie Kotzen*을 굉장히 좋아했다. 화제가 나온 김에 나는 마침 예전에 사뒀던 Poison의 [Native Tongue] 얘기를 꺼냈다. 테잎으로 소유하고 있던 앨범이었다.

잠깐 이 테잎을 구입했던 기억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반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에 CD와 테잎 구입도 완전히 랜덤 방식이었다. 특히 메탈리카나 본 조비 같은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검증된 초대형 밴드들의 음악이 아니라면, 구입한 음반을 계속 듣게 되느냐 마느냐를 순전히 순간의 선택에만 의존한 셈이었다.

[Native Tongue]으로 말하자면 ‘마느냐’에 가까웠다. 테잎을 구입했던 그때는 이 블루지한 필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머틀리 크루나 데프 레퍼드와도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두어 번 재생 후에 서랍 속에서 기약 없는 내일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시 꺼낸 것은 그 기타 선생님의 언급 후였다. 선생님의 성향은 얼터네이트 피킹보다 레가토 주법을 선호하는 쪽에 가까웠다. 리치 코젠은 그런 면에서 대단하다고도 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서랍을 열고 테잎을 찾아냈다. 오랜만에 오디오의 테잎 데크도 열었다. 근데 테잎을 재생할 수가 없었다. 서랍 속의 테잎을 다시 꺼낸 그때는 이미 CD의 시대로 넘어온 후였다. 당연히 오랫동안 테잎은 구입을 한 적도, 그것을 데크에 꽂아 플레이 버튼을 눌러본 적도 없었다. 먼지만 쌓인 테잎 데크는 시대의 변화를 온몸으로 구현하듯 [Native Tongue] 테잎을 끝내 거부했다. 결국 곧장 레코드점을 찾아가 CD를 샀다. 그리곤 집으로 돌아와 먼지 없이 깨끗한 CD 트레이에 올려놓고 리치 코젠의 플레이가 담긴 포이즌의 음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예전 두어 번에 그친 감상이 떠올려지진 않았다.

이럴 때 사람의 취향은 그다지 공고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 기타를 가르쳐 주던 그분의 권위(?)가 감상에 영향을 끼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건 그때 그 느낌이 아니었다. 나의 입맛이 그새 이렇게 변할 수가. 촌스럽게만 들리던 블루지한 느낌이 이토록 싱싱하게 다가오다니.


Poison
Native Tongue

01. Native Tongue
02. The Scream
03. Stand
04. Stay Alive
05. Until You Suffer Some (Fire And Ice)
06. Body Talk
07. Bring It Home
08. 7 Days Over You
09. Richie's Acoustic Thang
10. Ain't That The Truth
11. Theatre Of The Soul
12. Strike Up The Band
13. Ride Child Ride
14. Blind Faith
15. Bastard Son Of A Thousand Blues
 


포이즌이 알코올과 약물로 급기야 공연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던 C.C. DeVille을 해고한 후 당시 새로운 기타 영웅 리치 코젠을 영입해 만든 앨범이 바로 [Native Tongue]이다.

결과적으로 보건대 전세계적으로 백만장만(!)을 기록했던 당시 [Native Tongue]의 판매량은 이들의 명성과 인기에 비하면 만족할 수 없는 수치였음이 분명하다. 생각해보라, 80년대는 이런 음악들의 전성기였고 포이즌은 머틀리 크루, 건즈 앤 로지즈 등과 함께 이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던 밴드였다. 앨범을 발매하면 자국 내에서만 수백만장을 팔아 치우던 이들에게 [Native Tongue]은 확실히 실패작에 가까웠다. 이런 걸 보면 음악의 완성도와 대중의 사랑이 꼭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리치 코젠 이전의 기타리스트였던(지금은 Blues Saraceno를 거쳐 다시 밴드에 합류한) C.C. 데빌은 사실 뛰어난 연주자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전세계에서 수많은 기타 히어로들이 난립하던 시절이었다. 웬만한 연주로는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던. 그의 연주가 포이즌의 음악에는 어울렸는지 모르지만 기타에 심취한 애호가들에게 성에 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머틀리 크루의 믹 마스(Mick Mars)가 [Dr. Feelgood]에서 그 연주 가능한 범위를 확장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C.C. 데빌은 연주자보다 알코올과 약물이라는 록스타로서의 본연(?)에 더 충실했다. 지금이야 뭐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땐 그랬다.

리치 코젠을 단순히 연주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C.C. 데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기에 끈적끈적 블루지한 감성으로 가득한 그 색깔은 또 어떻고. 더구나 그 잘생긴 외모는 이 그루피들을 몰고 다니는 로큰롤밴드와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조건이었다. 리치 코젠의 연주와 작곡센스가 가미된 [Native Tongue]은 아티스트로서의 포이즌의 위상을 격상시킨 음반임이 분명하다. 물론 팬들은 기존의 흥청망청 파티타임 로큰롤에 더 익숙해져 있었겠지만.

Poison ‘The Scream’ Live, on YouTube
*


첫 곡 ‘The Scream’에서부터 포이즌의 에너지는 폭발한다. 적당한 완급조절에 좀처럼 귀를 놓아주지 않는 리치 코젠의 리프. 울부짖듯 차츰 상승하다 특유의 레가토 프레이즈들을 쏟아내는 기타솔로.

두 번째 노래 ‘Stand’는 앨범의 5번 트랙인 ‘Until You Suffer Some (Fire And Ice)’와 함께 [Native Tongue]의 최고 트랙이다. 확실히 이런 카우보이 냄새 물씬한 두 곡의 분위기가 이 음반을 테잎으로 들었을 땐 일종의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CD로 다시 들었을 때는 그런 느낌이 희한하게도 사라져 있었지만. 어쨌든 성가대 합창단의 코러스로 풍부하게 장식된 ‘Scream’과 Brett Michaels보다도 더 멋진 리치 코젠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Until You Suffer Some (Fire And Ice)’는 이 앨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들이다.

Poison ‘Until You Suffer Some (Fire And Ice)’ Music Video, on YouTube


그렇다. 리치 코젠이 이 앨범에 불어넣은 기운은 비단 연주와 작곡에 관련해서만이 아니었다. 그루브 가득한 ‘Bring It Home’이나 질주하는 로큰롤 ‘Strike Up The Band’, 앨범의 마지막 곡이자 블루지한 리프에 실어 보컬을 주고받는 ‘Bastard Son Of A Thousand Blues’ 같은 노래들에서 슬쩍슬쩍 들려주는 리치 코젠의 목소리는 어떤 면에선 사실 프론트맨인 브렛 마이클스보다 낫게 들린다.

그 밖에도 ‘Body Talk’, ‘7 Days Over You’, 혹은 ‘Blind Faith’ 같은 노래들을 즐겨 들었다.

굉장한 실력에 멋진 외모까지 갖춘 리키 코젠이 팀의 드러머 Rikki Rockett의 약혼자와 염문을 뿌리지만 않았더라면 포이즌의 미래는 또 어떻게 변했을까. 비록 이 보물 같은 기타리스트가 팀에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 주진 못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Native Tongue]의 새로운 음악적 색깔보다는 메틀의 시대가 저물던 당시의 음악계 흐름과 더 연관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또 한편으론 단 한 장만으로 끝난 이들의 만남이 [Native Tongue]을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희귀하게 빛을 발하는 앨범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고.

Poison ‘7 Days Over You’ Live, on YouTube



* 당연히 이 기타리스트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미스터 빅의 콘서트 영상에서 에릭 마틴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은 있다. 그것은 확실히 리치 코젠보다 리치 캇젠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마돈나와 마더나의 차이와 흡사한 이 발음의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수많은 외래어의 정착과정에서 발음 또한 현지화되듯 사람의 이름 또한 정확하든 아니든 처음 불렸던 그대로 관습이 되어 이어지는 것이리라.

블로그 주인장은 원어민도 아니고 솔직히 영어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심각한 간극을 느끼는 평범한 토종 혓바닥의 소유자다. 허나 사람 이름만큼은 제대로 불러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젠으로 표기한다. 이건 뭐지.


* 이제부터 imeem을 한번 사용해보려 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 회선의 문제인지 사이트가 열리는데 반나절이 걸린다. 다른 어떤 감상매체도 그렇겠지만 음악은 더욱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보다 한번 들어보는 것이 나은데 저작권이니 뭐니 해서 이것도 참 여의치 않다. 그대신 유튜브에서 찾은 영상들을 링크하려 한다. 제발 지워지지 말고 오래 남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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