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 D-War / 디 워 (2007)

재밌는 현상이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디 워D-War"를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외침이 들리는 반대쪽에는, 보지도 않고 ”디 워“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한 감독의 피나는 ‘노력(또는 고생)’과 그 ‘영화의 완성도’는 정작 별개의 문제다. 높은 ‘영화의 완성도’는 ‘노력’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고생만 한다고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작인 ”용가리“에 쏟아진 각종 비판과 비난들이 부당하다며 절치부심하여 만든 ”디 워“는 과연 감독인 심형래의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물일까. 이래저래 떠도는 말보다 이무기의 실체를 직접 보는 편이 후련할 듯 했다. 그래서 극장을 찾았다.


심형래의 프로필이 박힌 제작사의 로고가 지나면, 한글과 용의 형상, 그리고 우리의 민화들이 어우러진 오프닝 위로 이무기의 전설을 설명하는 내레이터의 음성이 흐른다. 시작부터 영화는 별도의 도입부 없이 괴생명체가 휩쓸고 간 참사의 현장에 카메라를 드리운다. 주인공이자 취재를 나온 기자로 등장하는 이선(Ethan: Jason Behr)은 비늘모양의 물질을 발견하고 이 사건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운명적으로 느낀다. 그것은 이선의 어린시절, 골동품 가게 주인 잭(Jack: Robert Forster)에게 전해 들었던, 이무기에 얽힌 한국의 전설 때문이었다. 이선은 여인으로 태어난 여의주를 악한 이무기 ‘부라퀴’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호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다. 이선은 동료의 도움으로 현시대에 환생한 여의주가 새라(Sarah: Amanda Brooks)인 것을 알게 되고 이 때부터 그녀를 찾는 부라퀴 무리들과 쫓고 쫓기는 게임을 펼치는데...

 

“디 워”는 영화 후반부의 부라퀴 무리들과 벌이는 시가지 전투와 마지막 이무기들의 싸움에 모든 초점이 맞춰진 영화다. 말하자면 심형래는 이 마지막 두 방에 관객들이 정신없이 나가떨어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플롯의 개연성을 찾는 일은 일찌감치 그만두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게다가 장면과 장면은 그 이음새를 무리하게 절단해 낸 듯 제대로 이어지질 않고, 도대체 왜 삽입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장면들이 속출한다.(지나가는 차에 물세례를 맞는 노숙자는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심형래가 늘 주장하는 모토는 좋은 기술력 없이는 좋은 시나리오도 없다는 것인데, 즉 이것은 아무리 탄탄한 시나리오라도 받쳐줄 기술력이 없으면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거기에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사실 별 볼일 없는 시나리오로 만들어졌다는 부연설명도 항상 따라다닌다. 얼핏 들으면 일리 있는 말 같다. 그러나 감독 심형래는 한가지 잊고 있는 게 있다.

 


상업영화에 있어서 좋은 시나리오란 관객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던져주는데 성공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영화의 등장인물에 손쉽게 동화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대본을 뜻한다. 그것은 평론가들이 잘난 체 할 때나 쓰는 영화의 예술적 측면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상업영화에서, 더구나 블록버스터에서 좋은 시나리오는 영화의 디테일한 설정이나 감독의 연출력으로 완성되는 것이지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실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같은 결말을 가진 두 영화가 있어도 서로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재미있는 영화가 되거나 아니면 그저 그런 시시한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형래의 “디 워”는 클라이맥스를 너무나 중요시한 나머지, 그 목표점을 향해 가는 길에 매력적인 이정표를 세우는 데 실패한 듯 보인다.

사람들이 “쥬라기공원”, “스파이더맨”, “트랜스포머”에 열광한 이유는 단지 그 놀라운 시각효과에 넉다운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형래가 당시 기술력에 감탄했다는 “쥬라기공원”의 전반부는 밀도 있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이미 “대결Duel"이나 ”죠스Jaws"를 통해서 관객들을 심리적으로 옥죄는 방면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스필버그는 “쥬라기공원”에서 거대한 공룡을 쉽사리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사파리를 평화롭게 도는 와중에, 사실은 하나 둘씩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만 넌지시 알려주면서 긴장감을 구축해 낸다. 아이들과 벨로시랩터의 유명한 부엌신scene에서도 관객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유지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명백하다. 이런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는 지점들이 모여 클라이맥스에서 놀라운 시각효과가 폭발하는 순간을 더 빛내 주는 것이다. 스필버그는 결코 특수효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는다.

“스파이더맨”은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관객들과의 일체감을 높인다. 벽을 기어오르고 거미줄을 발사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와 똑같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해야만 하는 스파이더맨의 아이러니가 영화를 보는 관객의 감정이입을 돕는 것이다. 주인공에 감정이입 된 관객이 그가 펼치는 현란한 액션에 더욱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폭 풍우처럼 한국 극장가를 휩쓴 “트랜스포머”는 어떤가. 빈약한 스토리를 감추기 위해 제작진이 택한 방법은 바로 ‘범블비’였다. 주 관객층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점을 감안할 때 현실에서의 그들의 욕망과 결합된, 최고의 자동차이자 수호신인 ‘범블비’는 별다른 이야기의 개연성 없이도 영화의 절정으로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라면 모두 샘 윗위키가 되어 ‘범블비’를 몰아보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성공적인 블록버스터들은 영화의 절정으로 가는 길목에 적절한 긴장감과 등장인물로의 감정이입 등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관객의 여정을 지루하지 않게 돕는다.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의 힘이다. 영화의 어색한 설정을 배재하고라도 “디 워”에서 이런 매력적인 중간점을 찾기는 힘들다. 이 영화에는 쫓고 쫓기는 자 사이의 긴장감도 없고, 전설의 배경이 되는 신비한 동양의 매력도 드러나지 않으며,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조심스레 기대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디 워”는 누더기처럼 기워진 개별 이야기들이 효과적으로 서로를 지탱해주지 못한 채, 바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달려감으로써 영화의 3분의 2를 아예 버려버린 듯한 느낌이다. 이쯤 되면 “디 워”가 목표점으로 삼은 것이 과연 A급 블록버스터였는지, 아니면 후세에 컬트물로 기록될지 모를 단순한 괴수영화였는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은 도심 시가지 전투라던가, 이무기들의 전투장면 등에서 “디 워”가 보여준 시각효과의 수준이 매우 높았기에 더욱 커 보인다. 특히 마지막 이무기들의 싸움에서 선한 이무기가 여의주를 머금고 용(드래곤이 아니다! 그야말로 동양의 용이다!)이 되는 장면은 굉장히 매력적인 순간이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동양의 용을 우리만의 기술력으로 멋지게 형상화한 것은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사실상 심형래는 이 한 장면을 위해 그토록 노력해 왔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 한 장면을 위해 나머지 80분을 무미건조하게 버려 버린 것은, 영화의 힘을 역설하는 심형래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그가 믿는 영화의 힘이란 결국 컴퓨터로 만들어진 괴물로만 형상화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쓸데없는 애국심은 감독 심형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 된 것은 훌륭하다고 인정하고 부족한 점은 그대로 지적할 줄 아는 솔직한 감상만이 그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또한 심형래는 악의에 찬 비난과 건설적인 비판을 구분해낼 줄 아는 사람이리라 믿는다. “디 워”는 분명 기술력만으로도 한국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게 되겠지만, 엔딩 크레딧의 감독의 변(辯)에 등장하는 단어, ‘세계최고’가 되기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심형래가 말하는 영화의 힘이 단지 ‘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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