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너희가 귀신을 믿느냐 - 1408 (2007)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장소들만 찾아가 그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마이크 엔슬린(Mike Enslin: John Cusack)은 사실 영혼의 존재에 회의적인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귀신이란 손님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된 호텔이, 왕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꺼내든 마지막 홍보수단에 불과하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소설가였던 그 자신에게도 귀신의 장소는 생계를 이어주는 글 소재 이상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한통의 엽서가 도착한다. 뉴욕에 위치한 돌핀 호텔의 1408호에 묵지 말라는 내용의 엽서. 엔슬린은 돌핀 호텔 1408호에 관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며 점차 그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각각의 수를 합치면 불길한 숫자 13이 되는 1408호는 그에게 글을 쓸 좋은 소재거리인 동시에 괴담을 홍보에 이용하려는 괘씸한 호텔 측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기회인 것이다. 예상대로 호텔은 1408호에 투숙객을 받지 않는다고 하고, 호텔의 매니저 올린(Olin: Samuel L. Jackson)은 엔슬린에게 1408호에 얽힌 끔찍한 사건들을 얘기해주며 투숙을 말린다. 바로 95년동안 56구의 시체가 그 방에서 나왔다는 것. 하지만 그것조차 호텔의 홍보수단으로 여긴 엔슬린은 기어코 1408호의 열쇠를 얻어내고야 마는데...


1408호가 돌핀 호텔의 유치한 홍보수단인 줄로만 믿었던 엔슬린은 점차 이것이 단순한 장난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신이 방 안에 갇혀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건너편 건물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손짓을 한다. 그러나 건너편의 남자는 구해줄 행동을 취하기는커녕 점점 엔슬린의 행동을 따라하기 시작하더니, 자세히 보니 엔슬린의 모습 그대로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몇 안되는 소름끼치는 순간인데, 이처럼 영화 “1408”은 사물과 현상을 이성으로 설명하는 대신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초현실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마이크 엔슬린은 (아마도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한)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딸아이를 잃은 경험으로 불행한 과거를 간직한 인물이다. 1408호는 마치 독립된 생물체처럼 그를 서서히 압박하고 결국엔 잊고 싶은 그의 과거들을 하나 둘씩 꺼내놓는다. 공포를 이용해 독자와의 심리싸움에 능한 작가, 스티븐 킹 원작의 “1408”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어 관객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귀청 떨어지는 음향효과를 동반하여 우리를 놀래는데 주력하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관객은 아무 문제없는 방처럼 보이는 1408호가 편안한 호텔방에서 서서히 공포의 장소로 변하는 과정을 마치 환각제를 복용한 것처럼 갖가지 환상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영화의 앞뒤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길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1408”은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의 중반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주인공 엔슬린이 경험하는 환상의 연속이다.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던 설정은 엔슬린이 60분 동안의 끔찍한 환상을 경험한 후, 그에게 다시 60분간의 환상에 체크인 할 것인지 물어오는 호텔 데스크의 전화였다. 영화는 이 환상이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 것이야말로 궁극의 공포일 것이다. 도저히 현실로 빠져나올 수 없는 환상의 세계에 홀로 남겨진다는 상상은, 갑자기 등장해 관객을 놀래는 괴물의 형상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까지다. 결국 엔슬린은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이 엔딩은 관객이 쥐고 있던 공포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끝없이 반복될 줄 알았던 무서운 환각이 마침내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중후반부까지 타이트하게 조여 오던 긴장감은 이내 탁 풀어지고, 관객이 느낀 공포감까지 고스란히 회수해 가는 것이다. “1408”이 여운 있는 공포를 위해 마지막에 취하는 전략은 ‘사실 그 환상은 사실이었다’ 정도인데, 그건 엔슬린이 취재를 위해 사용하는 녹음기에 남아있는 죽은 딸과의 대화가 넌지시 암시한다. 그런데 그것조차 전혀 공포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은 그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맥 빠지는 결말이 원작자 스티븐 킹의 의도였는지, 각색과 감독을 겸한 스웨덴 출신의 미카엘 호프스트룀Mikael Håfström의 의도였는지는 소설을 미리 접하지 않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괴담의 장소를 취재하면서도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냉소적인 성격의 작가 캐릭터는 존 쿠잭의 모습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영화 “1408”은 존 쿠잭의 원맨쇼나 다름없는 영화다. 대부분의 사건들이 1408호라는 방 안에서 이루어지고, 영화는 방 안에서 차차 미쳐가는 엔슬린의 심리상태를 쫓아간다. 존 쿠잭이 보여준 뛰어난 연기력을 감안할 때, 영화의 다소 힘이 빠진 결말이 더욱 안타깝다.

- IMDB에서 알려주는 영화에 대한 재밌는 사실 하나:


13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숫자다. 1408은 그대로 더하면 13이 되고, 방이 있는 층인 돌핀 호텔의 14층은 건물에 13층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13층인 셈이다. 또한 방의 열쇠에 새겨진 6214라는 숫자는 또 각각 더하면 13이 된다. 마지막으로 1408호의 첫 번째 희생자가 사망한 해가 1912년인데 이 또한 더하면 13이 된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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