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아날로그 액션의 쾌감 - Die Hard 4.0: Live Free Or Die Hard / 다이 하드 4.0 (2007)

디지털 시대의 영웅들은 모두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 네오는 물론이고, 손목에서 뿜어낸 거미줄로 도시의 미화원들을 힘들게 하는 스파이더맨,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면 갈고리가 주먹을 뚫고 나오는 울버린까지, 이제는 뭔가 신기한 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그럴듯한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말하자면 지금의 헐리웃 액션 영화는 이런 초능력자들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그런데 오랜 세월 칩거하고 있다가, 그런 시대의 흐름을 못 참고 등장한 사람이 여기 있다. 절대 죽지 않는, 아니 죽는 것 빼고는 다 잘하는 남자 존 맥클레인(John McClane: Bruce Willis)이 돌아온 것이다!

네오가 100명의 스미스와 장렬하게 싸우고 있을 때 그 모습이 실제의 키아누 리브스라 믿었던 이는 어린아이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건 분명 애니메이션화된 네오였다. 스파이더맨이 건물을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에도 관객은 그가 컴퓨터그래픽임을 알면서도 눈감아준다. 결국 그들의 초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정작 자신들이 지워지는 과정이 뒤따르는데, 그래서 화려한 디지털 액션씬에도 불구하고 요즘 액션 영화들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동반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영웅이었던 존 맥클레인은 굳이 자신을 지울 필요가 없다. 그는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한 손으로 건물을 부술 줄도 모른다. 다만 끈질기게 죽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뭔가에 익숙해지고 이내 그것에 식상해지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과거의 것을 다시 가져오기도 한다. 화면속의 CG만을 바라보다 지친 일부 관객들에게 0과 1로 생성되지 않은 생생한 캐릭터 존 맥클레인의 모습은 또 다른 볼거리다. ‘디지털 시대의 퇴물’이라 불려도 그가 우리에게 지지받는 이유는 과거 모습 그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시대다.

부인과는 이혼하고, 딸내미에게는 싫은 소리를 듣고 사는 이 외로운 사나이는 『다이 하드 4.0』에서 뛰어난 전직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인 악당 토마스 게이브리얼(Thomas Gabriel: Timothy Olyphant)과 정면 대결을 펼친다. 왠지 이 대립구도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즉 『다이 하드』시리즈와 지금의 다른 영웅영화를 빗댄 대결 같아 더 흥미롭다. 더구나 미국을 위협하는 악당이 외부의 테러집단이 아니라 내부의 인물인 점, 게다가 미국이 그의 테러에 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설정은 『다이 하드 4.0』을 과거와 똑같은 구시대의 산물로 만들지 않고, 이 영화를 매력적인 캐릭터만 끌어온 새로운 액션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언더월드』시리즈의 창조자인 젊은 감독 렌 와이즈먼(Len Wiseman)은 그의 전작들을 통해 꾸준히 고수해 온 블루톤의 화면과 이 시대 액션영화의 전범(典範)이 된 마이클 베이식의 연출법을 이용해, 80년대의 영웅을 2007년에도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만들어냈다. 또한 아날로그 액션씬과 함께 적절히 사용된 CG도 무리없이 영화에 잘 어울린다. 한마디로 예전의 영웅은 그대로 돌아왔지만 디지털의 도움으로 그의 활약은 더 박진감 있어지고 스케일이 더 커진 것이다. 이는 열성적인 『다이 하드』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지지자들을 만들어내는데도 효과가 있어 보인다. 존 맥클레인은 능력있는 제작진들에 의해, 적재적소의 시기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911테러 이후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 미국관객들에게, 사회제반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악당의 모습은 분명 가볍게 치부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그것과 관련하여 특히 재밌는 대목은 맥클레인이 구출한 해커 매튜 패럴(Mathew Farrell: Justin Long)이 브루스 윌리스에게 뉴스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그는 미디어가 현대인을 공포로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화씨 911(Fahrenheit 911)』을 만든 마이클 무어의 전작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에서 마릴린 맨슨의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테러에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지역의 사람들까지 미디어가 조장하는 테러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무의식적인 공포를 조장하는 미디어와 테러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영화에서 악당 토마스가 시민들을 겁주는 방법도 주로 미디어를 장악하며 시작되는데, 이것은 매튜 패럴의 대사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의미 있는 것이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다이 하드 4.0』은 911테러가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테러에 대한 공포를 영화적으로 이용하는데 성공했다.

해커들이 도로의 신호체계를 마비시켰을 때, 맥클레인이 차 밖으로 나와 둘러보는 장면과 혼란스러운 사람들로 가득한 경찰서의 모습은 적어도 미국관객들에게 영화의 장면 이상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임이 분명하다. 영화가 도입부부터 관객들의 무의식적인 공포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관객들은 기꺼이 영화에 몰입할 준비를 갖춘다. 즉 존 맥클레인과 매튜 패럴의 죽도록 고생하는 모험에 쉽게 동참하는 것이다.

『다이 하드 4.0』에는 뛰어난 액션 영화답게 볼거리가 많은데, 특히 액션씬을 조율하는 감독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영화는 매튜 패럴의 집에서 간단한 총격전으로 위밍업을 마치고, 신호체계가 마비된 도로에서 본 게임을 시작한다.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에 이어서, 자동차를 그대로 돌진해 헬기를 폭파시키는 장면은 관객의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첫 번째 지점이다. 아름다운 여악당인 마이 린(Mai Lihn: Maggie Q)과의 결투, 야마카시로 단련된 악당과의 대결등도 볼만하지만, 존 맥클레인이 F-35와 1대1로 맞부딪치는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이 영화의 절정이다. 아날로그 영웅이 디지털 화면에서 그만의 액션을 펼치고 있는 이 장면은, 미국의 최첨단 전투기 F-22를 드러내놓고 광고했던 『트랜스포머』처럼, F-35의 광고의 장으로 적절히 사용되었다는 것에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지만, 이 장면에서 액션의 쾌감이 최고조로 달해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다이 하드 4.0』에 대한 관객들의 지지는 이처럼 액션 시퀀스를 알맞게 배치하여 쾌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뛰어난 연출력의 결과다.

드디어 연기인생에서 그의 페르소나라 해도 다름없는 존 맥클레인으로 다시 돌아온 브루스 윌리스는 나이만 들었을 뿐 옛날 모습 그대로다. 그것은 빈정거리는 말투가 입에 배어있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유있는 농담 한마디를 꺼낼 줄 아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맥클레인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Mary Elizabeth Winstead)가 연기한, 아버지 존 맥클레인과 성격이 똑 같은 딸 루시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치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헐리웃 핀업스타들이 연상되는데,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스타워즈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는 감독이자 배우, 케빈 스미스(Kevin Smith)가 뚱뚱한 해커 월락으로 등장하는 장면도 재밌는 순간이다. 그는 그 자신의 실제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영화에서도 스타워즈 마니아로 연기하고 있는데, 배우들의 이름이 변환되며 사라지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면 그의 이름, Kevin Smith가 m이 사라지고 Kevin Sith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Sith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와 대립되는 어둠의 기사집단 시쓰를 가리키는 말이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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