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세계 - Silent Hill / 사일런트 힐 (2006)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 존 쿠잭 주연의 영화 『1408』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작년에 본 영화『사일런트 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별도의 원작(각각 스티븐 킹의 소설, 일본 코나미사의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데, 그나마 공포의 소재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상을 다뤘다는 점이 비슷했고, 아마도 두 영화의 결말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매듭짓는 방식이 서로 달랐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1408』은 주인공 엔슬린이 겪은 환상이 결국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면서 관객의 공포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사일런트 힐』은 마지막까지 현실과 환상이 서로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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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힐』의 결말에서 주인공 로즈(Radha Mitchell)는 딸 샤론(Jodelle Ferland)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남편 크리스토퍼(Sean Bean)의 눈에는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시공간 안에 있는 셈인데, 로즈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환상의 영역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남편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죽은 딸아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잎을 들려주며 짐짓 진실을 알려주듯 아내를 응시했던 『1408』의 엔슬린보다, 집에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환상에 빠져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로즈의 모습이 아직까지 더 기억에 남는다.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는 개인의 취향에 달린 문제겠지만, 『사일런트 힐』은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음에도 그 마지막 장면 때문에 『1408』보다 더 인상적인 영화로 남아있다. 끝없이 반복되는 환상의 이미지는 ‘그 귀신은 실제다’라는 단순한 결말보다 더 매력적이다.

 


원작게임의 높은 완성도(?) 때문에 1편을 플레이하다 중간에 그만둔 나는, 원작과 영화 『사일런트 힐』의 관계를 자세하게 서술할 수는 없는 위치다. 다만 갖가지 괴물들과의 조우라던가, 주인공이 아이템, 무기 등을 습득하는 장면, 그리고 풀어야 할 퍼즐이 등장하는 일반적인 호러어드벤처게임의 클리셰를 영화에서 그대로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사일런트 힐』은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다. 이를테면 원작게임 2편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레드 피라밋(일명 ‘삼각두’)의 등장(그것도 더욱 카리스마가 강화된 이미지로)이나, 주인공 로즈가 열쇠를 습득하는 장면, 그리고 알레사(샤론)를 만나기 위해 건물의 지도를 외우는 부분 등은, 원작게임과 닮아있으면서도 대다수 어드벤처게임의 클리어진행 방식과도 거의 같다.

원작게임의 열렬한 팬임을 밝힌 크리스토프 강(Christophe Gans)의 『사일런트 힐』은 어떠한 외부의 간섭도 없이 감독의 원래 의도대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보도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가 이 영화의 감독직을 따내기 위해 5년이나 걸렸고 코나미사에 직접 제작한 영상(자신이 원작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인터뷰와 자비를 들여 만든 일종의 데모영상을 포함한 비디오)을 보내기까지 했다는 사실은, 게임에 대한 그의 애정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애초에 그가 원작게임의 세계관을 크게 훼손할 의도가 없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지만, 『사일런트 힐』은 지금까지 나온 게임원작영화중 가장 게임에 가까운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것을 거창하게 새로운 영화문법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겠으나 재미있는 실험의 일환인 것은 분명하다. 『사일런트 힐』은 아마도 호러영화팬들보다 호러어드벤처게임팬들에게 더 환영받을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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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하나 남았는데, 그것은 영화 전체에 감도는 아키라 야마오카(Yamaoka Akira, 山岡 晃)의 음악이다. 원작게임의 프로듀서이자 음악감독이기도 한 그의 사운드트랙은 대부분 앰비언트 계열의 몽롱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영화의 엔딩테마인 “You're Not Here"는 원작게임 3편의 수록곡이기도 한데, 락뮤직에 가까운 이런 보컬곡도 좋지만, 회색 재들이 눈처럼 떨어지는 마을 ‘사일런트 힐’의 공허한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여타 사운드트랙도 모두 필청(必聽) 트랙들이다. 아키라 야마오카의 음악은 오히려 게임과 떼어놓고 감상했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될 만큼 완성도가 높다. 크리스토프 강이 이 영화의 감독을 맡기 위해 코나미사에 보낸 짧은 필름에는 아키라 야마오카의 게임음악들이 덧붙여져 있었다고 한다.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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