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함정에 빠진 스나이퍼 - Shooter / 더블 타겟 (2007)

 

 



안톤 후쿠아의 작품들은 액션영화의 마초중심적인 외피 속에 풍부한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스타일에 집착한 시각적 이미지로 승부하는 영화들이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이 궁리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현란하고 더 강렬한 이미지들을 더 많이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물음일 텐데, 안톤 후쿠아도 홍콩 느와르의 형식을 헐리우드 속에 녹여내려 했던 데뷔작 『리플레이스먼트 킬러』(1998)에서부터 줄곧 스타일리쉬한 액션씬을 짜내는데 골몰한 흔적이 보이는 감독이다. 뮤직비디오 출신의 감독들이 대개는 그렇듯 그도 영화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안톤 후쿠아의 최고작 『트레이닝 데이』(2001)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액션장면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않고 두 인물(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가 주(主)가 된다. 『트레이닝 데이』의 단점이자 장점은 이 두 캐릭터간의 긴장의 밀도가 너무나도 높아서 오히려 영화의 다른 부분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거기에 더해서『트레이닝 데이』를 보면서 느낀 것은 캐릭터를 불가항력(不可抗力)적인 상황에 던져 넣고, 그것을 관객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는 것이다. 『트레이닝 데이』의 재미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는 것에서 온다. 이건 분명 액션의 화려함에 주안점을 둔 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재미다. 게다가 극중에서 에단 호크는 분명 상대적인 약자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을 때의 쾌감이 더 극대화된다. 관객은 그의 캐릭터가 그가 처한 상황보다 우위에 있을지 아닐지를 가늠하는 동안 영화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다.

『더블 타겟』은 영화의 3분의 1쯤까지는 그런 재미를 준다. 예고편을 미리 본 관객들이라면 그런 재미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주인공인 밥 리 스웨거(마크 월버그)가 어떻게 함정에 걸려드느냐를 지켜보는 처음 과정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러나 『더블 타겟』은 기본적으로 『트레이닝 데이』처럼 캐릭터간의 심리싸움에 기대는 영화가 아니며, 영화 속 주인공이 걸려드는 상황들은 대부분 그가 충분히 헤쳐 나가리라 기대되는 것들이어서, 관객은 영화의 재미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후자는 원작(스티븐 헌터의 “Point Of Impact”)으로부터 탄생된 이 영화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결과로 밥 리 스웨거의 캐릭터 설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국가로부터 배신당해 산속에 홀로 칩거하면서도 여전히 충성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군인인 동시에, 고도의 혹독한 훈련을 거친 만능형 인간이다. 대통령 암살저지를 도와달라는 의뢰가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함정이 된 후, 밥 리 스웨거는 도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러나 온갖 생존기술을 익힌 이 주인공이 영화 『더블 타겟』에서 이겨내지 못할 상황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는 총에 맞아도 의료진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혈을 할 수 있고, 회복에 있어서 부족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소금과 설탕을 이용, 포도당을 주사할 수 있으며, 총상부위의 감염을 막기 위해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하는지도 충분히 알고 있다. 또한 그가 각종 무기사용법에 통달해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형적인 80년대 마초영웅에 가까운 이런 만능형 캐릭터의 재림은 왠지 올해 개봉된 다른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올해 개봉된 『다이 하드 4.0』은 브루스 윌리스의 유쾌한 캐릭터,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유머, CG와 적당히 결합된 현란한 액션씬, 그리고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가 맞물려 큰 재미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더블 타겟』이 지금의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더블 타겟』이 내뿜고 있는 (아마도 원작에 기인한)심각한 이미지는 이 영화가 ‘다이 하드’류의 장쾌한 액션영화라기보다 ‘본 시리즈’의 진지함과 가깝다고 설명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항상 영화적 상황보다 우위에 있는 주인공의 능력(그렇다고 존 맥클레인처럼 만화적이지는 않은), 어떠한 긴장감도 유발하지 못하는 평면적인 캐릭터, 시원시원하긴 하나 가뜩이나 현란한 지금의 액션장면들 사이에서 명함도 못 내밀 액션시퀀스, 영화 초반 잘 짜인 듯 보이지만 그나마 중반 이후 흐지부지 되는 스릴러적 요소들이 『더블 타겟』을 이도저도 아닌 지루한 영화로 만들었다.

게다가 여기에 정치적 입장을 애써 회피하듯 애매하게 마무리된 결말이 더해지면, 안톤 후쿠아가 『더블 타겟』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불확실하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 누군가 ‘그건 원작의 내용과 똑같이 묘사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다’라고 말해 준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러나 이 영화를 좋아할 한 부류의 관객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은 밀리터리 매니아, 아니 더 나아가 무기를 좋아하고 군복이 입고 싶어 안달이 난 관객들. 또한 만약 자신이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볼 때, 다른 어떤 장면에서보다 배리 페퍼(Barry Pepper)가 등장한 씬에 열광했었다면 『더블 타겟』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근육질의 마크 월버그가 ‘원 샷 원 킬’의 황홀경을 경험하게 해 줄 테니까.

 

* 이미지출처 www.im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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