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독서습관에 대한 보잘것없고 두서 없는 고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문서 판독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텍스트를 읽고 요약이나 이런 걸 잘 못했던 것 같다. 독서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그 능력이 향상된다고 봤을 때 아무래도 그 원인은 턱없이 부족한 독서량일 것이다. 그래도 대학교 시절 도서관은 참 좋아했다. 일일이 읽지는 않았어도 왠지 책 냄새 가득한 그곳엘 가면 저절로 지혜가 깨우쳐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착각 혹은 어설픈 자기위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책 몇 권을 골라놓고 앉으면 시간이 잘도 흘렀다는 사실이다. 졸린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아 간이베개로 쓰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어쨌든 책에 대해 넘치진 않아도 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한 예로 아무리 편리한 도구들이 많이 나와도 휴대용기기를 통해 E-북이나 텍스트파일을 읽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손에 잡히는 그 종이질감이 좋다고 할까. 더구나 몇 번의 시도로 깨우친 결정적인 사실은 조그만 화면 속의 디지털 활자는 나의 판독능력을 더욱 저하시킨다는 점이었다. 눈과 뇌 사이의 협력관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각은 화면을 향하고 있는 동안 두뇌는 저 달과 지구 사이 어디쯤에 가 있었다. 내 뇌도 어느새 책에서 풍기는 냄새를 포착하는 후각에 더 민감해진 셈이었다.

 


인쇄된 책은 묵직하다. 어쩌면 그래서 이쪽에 더 습관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무형의 파일들보다 유형의 종이는 뭔가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책은 그 자체로 지식의 형상화, 지혜의 그릇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화면 속의 활자는 아무리 중요한 무언가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공기 중을 부유하는 곧 사라질 연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나도 알고 있다. 누군가가 마련할 기준에 견주어보자면 나는 아날로그적 인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쩌랴, 내 느낌이 그렇다는데. 공기 속의 연기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나는 그릇 속의 만져지는 내용물을 직접 손으로 꺼내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차마 책을 좋아한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떨어지는 판독능력과 보잘것없는 독서량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은색 활자가 선명히 적힌 종이뭉치를 곁에 두기 좋아한다, 고 말하는 편이 났겠다. 생각해보면 내 사고방식의 3할은 가족으로부터, 2할은 스승들로부터, 나머지 5할은 모두 내가 읽은 책으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더라도 나를 이루는 이 정신세계의 최대지분은 역시 책이 가지고 있다. 책에 대한 작은 호감은 결국 나를 만드는 재료로 탈바꿈한다.

읽고 싶은 책은 수없이 많다. 한정된 인생 속에서 못 보고 지나치는 책들만 하더라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을 것이다. 시간은 없는데 책 보는 것 외에도 할 일은 많다. 영화도 봐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하고 기타도 쳐야 하고 먹고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무엇을 읽을까 열심히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는 한편 선택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아주 간단하다. 집안 주위를 둘러보면 읽히지도 않은 채 방치된 책들이 너무나 많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사온 책,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은 책, 별로 호감은 없었지만 할인행사에 눈이 혹해 구입한 책 등 서로 ‘나 좀 읽어줍쇼’ 하는 주인 잃은 책들이 집안에도 널려있다. 개중엔 읽고 나서 분명 후회할 책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 아니던가. 보고 싶던 책을 신중히 골랐든, 아니면 굴러다니는 책을 잡아 들었든 간에 만족과 후회의 이중감정은 언제나 존재한다. 결국 그걸 감당하는 것도 읽는 사람의 몫. 내 정신세계의 최대주주인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가운데도 지금 와서 별 소용없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겠지만 그 또한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좋은 책이든 나쁜 책이든 읽은 후엔 결국 내 자신이 된다는 점에서 무게감은 동일하다.

그래 역시. 내 요약능력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보잘것없고 두서 없는 이 짧지 않은 글의 요지는 첫째, 책의 외형이 가져다 주는 그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다는 것. 둘째, 읽고 싶은 책이 무척 많지만 선택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셋째, 집안을 정처 없이 떠도는 그 안쓰러운 책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겠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최근의 내 독서습관과 관련이 깊다는 게 결론이다. 자 이제, 먼지 쌓인 책장에 오래 묵은 책들을 조심스럽게 만져줘야겠다(이미 시작했지만). 쓸데없는 시간의 소비 없이, 아무 부담 없이 책을 선택해서 곁에 두고 좋은 느낌을 만끽하는 것이다. 그럼 무슨 책들이 있나 뒤져볼까? 내 손에 잡히는 처음 그 책, 너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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