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누굴 탓해야 할까.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비판할 대상을 찾는다. 때론 그 과녁이 틀리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 요량으로, 혹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구차한 변명의 강조로 이 비난의 화살을 누군가를 향해 겨눈다. 기나긴 교육을 받고 자연스레 사회 안에 안착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제자리를 못 찾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위태로운 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상황이다. 일찌감치 사회에 편입하는데 성공한 인생선배들은 그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음을 깨달으라 거의 책망조로 그들을 타이른다. 능력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눈높이, 힘든 일을 회피하려는 경향 등을 지적하면서. 결국 20대, 더 나아가서는 머지않아 20대가 될 10대들의 이 밝지 않은 미래상은 전적으로 그들만의 책임일까. 그들 스스로만 탓한다면 모든 게 해결될까.

 


아무도 구조적인 문제를 들춰보려 하지 않는다. 과정이 귀찮을 수도 있고 결과가 허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는 부메랑 같은 그 비난의 화살을 20대에게 겨누지 않는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우리나라 젊은이들 앞에 펼쳐진 잿빛 미래가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시대가 젊은이들에게 겨누는 독이 발린 화살의 정체를 밝혀보려 애쓴다.

 



책은 먼저 10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선 10대의 값싸고 질 좋은 노동력을 착취하는 세력과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 위정자들을 비롯 기성세대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우리시대의 10대들은 그들의 건전한 사회성을 독려할 어떠한 공공의 장치 없이 단지 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 전락한 채 획일화된 교육과 몰개성의 주위환경에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그들은 경제적 독립의 미래는 물론이고 다양성의 가능성마저 제거당한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생략한 채 그 겉모습만 들여온 이 사회는 규모의 성장만 외칠 뿐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미래의 주인에게 환원될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IMF 이후 개편된 사회의 시스템은 이를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승자만이 살아남고 패배자들은 모두 버리는 사회구조 안에서 10대의 미래인 20대의 상황 또한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90년대 말의 국가적 위기 이후 가속화된 독과점화로 인해 바람직한 경제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노출되었다. 또래 안에서가 아니라 아버지, 삼촌 뻘의 다른 세대와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경쟁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외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프로와 아마추어, 혹은 헤비급과 플라이급을 나누듯 비슷한 레벨의 그룹, 혹은 동일한 체급 안에서 진정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은 몸집과 연륜과 능력이 서로 다른 선수들을 막다른 골목에 한꺼번에 몰아 넣고 데스매치를 치르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10대, 20대는 바늘 구멍만큼 작아진 진입로에 들어서기도 전에 낙오자가 되거나 그나마 불안한 미래를 안고 가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그 생을 이어가야 한다.

<88만원 세대>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 특히 대개는 우리보다 상황이 나은 이른바 선진국의 상황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현 위기를 타개할 좀더 가능성 있는 해결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방법들은 사실 사회 전체가 조금의 관심만 기울인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들이지만 지금의 한국의 분위기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꿈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경제학이 마치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되면 이 세상이 천국이 된다고 외치는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활용되는 우리만의 특수한 상황 안에서 청년 실업률 정도를 제외하고는 실질적인 숫자로 계산되지 않을 젊은이들의 처지가 심각하게 고려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즉 재벌을 노골적으로 옹호하여 독과점화를 가속화시키면서 경제성장률이라는 눈 앞의 숫자만을 게걸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윗세대들이 지금의 청년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의 자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열악하기 그지없는 사회의 경제적 제반 사항을 자발적으로 점검하리라는 것은 <반지의 제왕>보다 더욱 멀리 나간 판타지에 가까운 얘기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얘기는 결국 ‘너무 곱게 자란 젊은이들이여, 알아서 정신 차려라’는 맥없는 구호뿐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들과 함께 이 책이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또 다른 위기극복 방법이 인상적인데 그것은 바로 ‘독서’. 이 바쁜 세상에 무슨 안이한 생각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이 같이 꽉 막힌 사회의 흐름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양성을 체득한 세대탄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들은 그 기저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들이 만들어낸 합성어 ‘다안성’(多安性, diverstability)과도 연결되는 다양성의 세대는 창의성을 고려 않는 한국의 교육체계와 경제구조변화의 영향으로 급격히 가속화되는 획일화에 저항할 수 있는 세대를 가리킨다. 표준화된 교육이 더 이상 사회적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지금 아래세대들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가야 한다. 독서는 아마도 그런 여정에 가장 도움이 될 유일무이한 행위가 될 것이다.

선진국 사례들의 소개와 독서로의 권유가 어느 정도 희망적인 시선을 머금고 있다손 치더라도, <88만원 세대>의 억양은 사실 비관적인 쪽에 더욱 가깝다.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반어적으로 처절하게 부르짖듯 적힌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는 문구는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희망’보다는 ‘절망’이라는 단어에 빨간 줄이 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위정자들의 단순한 숫자놀음과 기약 없는 약속에, 혹은 다같이 죽느니 나만 살겠다는 태도에 이미 현혹되고 익숙해진 대다수 사람들은 이 책이 순진한 꿈의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청소년, 청년들의 문제가 결국 우리나라의 미래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시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심각한 부작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조차 효율 없는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나를 포함해 우리세대가 처해 있는 이 끔찍한 한계점에서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되어 있는 것 같다. 글의 마지막을 애써 희망적인 어조로 끝내보려 해도 그것이 잘 안 되는 것은 <88만원 세대>가 꿰뚫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매우 정확하기 때문이리라.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사회에 사람들의 입을 막고 눈 가리는 성공의 찬양이 아니라 이런 본질의 탐구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 문제제기 이후에야 비로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비책이 나올 수 있음이 당연할진대, 지금 한국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에 익숙하지 않아 보인다. 위에서 말한 책의 표지문구에서 여전히 ‘절망’이라는 단어가 커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연 ‘희망’의 경제학을 이야기할 날이 올까. 주식값이 떨어졌으니 지금이 주식투자의 호기라는 괴상한 희망의 문구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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