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eeze - Begin Anew (2009)

그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장소는 지금은 문을 닫은 어느 대형 레코드 매장. 때는 CD 구경하다 눈에 띄는 몇 장을 골라 말 없이 계산을 치르곤 했던 평소와 달리, 매장 안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 어느 밴드의 것인지 아무 직원 분에게라도 물어봐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던 바로 그 날이었다. 바다를 건너 온듯한 사운드에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이 정체불명의 밴드는 도대체 누구죠!

직원 분의 대답은 ‘브리즈’. 그날로 그들의 데뷔앨범 [The Breeze]를 구입해 집으로 돌아와선 몇 번을 반복해 들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 농구대잔치 시절, 알론조 모닝의 호쾌한 슬램덩크보다 전희철의 부드러운(?) 덩크슛이 왠지 더욱 멋져 보였던 심리와 비슷하달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들 거라 믿은 퍼포먼스가 경기 중 실시간으로 펼쳐질 때,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유보한 채 우선 열광하게 되듯, 브리즈는 한국에선 찾기 힘든 음악을 들려주며 나를 포함한 적잖은 팬들을 만들어냈다.



지금 와서 [The Breeze]를 다시 꺼내 들어보면 당시엔 느끼지 못했던 부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밀하지 않고 답답한 사운드에, 다소 단순하고 투박한 멜로디와 리프. 다시 말하면 이는 브리즈가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음악적으로 전진해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브리즈의 두 번째 앨범 [Counterblow]는 말 그대로 수작이었다. 강불새가 읊조리는 특유의 멜로디 라인은 더욱 매끄러워졌고 진일보한 사운드 질감에 귀에 쏙 박히는 잘 만들어진 리프들. ‘뭐라 할까’에서 ‘Breeze’로 이어지는 멋진 슬로템포 트랙들. ‘Mr.오달수’, ‘무뢰한’ 을 비롯한 강력한 리프로 무장한 노래들. [Counterblow]는 유사 장르의 본토 밴드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넘버들로 채워진 앨범이었다. 브리즈는 [Counterblow]로 회심의 펀치를 날리고 그 만족감만큼 오랫동안 팬들을 기다리게 했다. 이들이 5년 만에 발표한 싱글, [Begin Anew]가 무척 반가운 이유다.

The Breeze
Begin Anew

01. Real Life
02. 촛불
03. I Will Be There
04. 촛불 (Inst.)
05. I Will Be There (Inst.)


[Begin Anew]는 세 곡의 신곡을 담고 있다. 듣는 이를 감질 맛 나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면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무뢰한’을 떠올리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리프구성과 시원한 후렴구, 여전히 믿음직한 강불새의 보컬과 절정의 순간 울부짖는 노주환의 솔로연주로 신나게 내달리는 ‘Real Life’는 이들의 복귀를 알리는 트랙으로 손색없다.

‘촛불’은 좀 의도가 엿보이는 곡이다. ‘뭐라할까’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한 이들로선 비슷한 느낌의 트랙이 하나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조용한 인트로로 시작해 마디 혹은 코드 단위로 터뜨리는 디스토션 사운드는 ‘뭐라할까’의 그것과 꼭 닮아있다. 때문에 ‘뭐라 할까’를 처음 들었을 때처럼 신선한 느낌은 덜하다. 그러나 흡인력 있는 멜로디는 여전하며 강불새의 목소리가 살아있다.

4, 5번의 ‘노래방’ 트랙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인 ‘I Will Be There’는 긍정적인 메시지와 사운드를 담고 있다. 브리즈는 가벼운 미들 템포의 이 곡으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2004년 [Counterblow] 이후로 앨범이 나오지 않아 밴드 존속에 문제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Counterblow]는 한참 동안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앨범이다. 새 앨범이 나오지 않으니 이 앨범 하나로 오랫동안 버텨보는 수밖에.

이들의 새 싱글 녹음작업엔 기존 멤버들 중 강불새와 노주환만이 참여했지만, 그럼에도 기존 브리즈 사운드의 특징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헤비한 리프진행이 돋보이는 ‘Real Life’, ‘뭐라할까’의 분위기를 이어줄 ‘촛불’, 밝고 경쾌한 ‘I Will Be There’. 이 세곡으로 드디어 플레이리스트는 교체됐다. [Begin Anew]엔 충격을 줄만큼 새롭거나 놀라운 시도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꽉 찬 사운드와 수준 높은 곡의 완성도는 조만간 나올 이들의 정규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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