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발견된다. 옷은 벗겨져있고 지문은 모두 지워진 상태. 얼굴도 신원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망가져있다. 그러나 단서는 남아있는 법. 피해자가 사용한 듯한 자전거에서 지문이 발견된다. 자전거는 도난 된 것으로 판명되고 근처엔 소각되다 만 피해자의 옷가지가 있다. 갑자기 사라진 투숙객을 의심스럽게 여긴 어느 여관주인이 신고를 해와 경찰은 지문을 대조해본다. 일치한다. 피해자의 이름과 직업, 과거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 밝혀진 단서들을 조합해 범인을 잡아내야 한다. 죽은 이와 관련 있던 사람들을 검색하고 살해동기가 있을 법한 인물들을 추려낸다. 범인은 언젠가 밝혀지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은 마치 콜롬보 형사의 수사일지에서처럼 독자에게 범인을 미리 알려주며 시작한다. 이 추리소..
이번에야 비로소 스티븐 킹의 책을 제대로 읽은 셈이지만, 를 읽는 내내 마치 그만의 세계를 미리 체험해본 듯한 묘한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니 확실히 스티븐 킹의 여타 작품들을 이미 숱한 영상매체를 통해 먼저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색이 원작을 그대로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믿음 아래, 몇 편의 영화를 본 것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음산하고 축축한 특유의 촉감만은 원본과 복제 모두 공유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책을 읽고 관련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좀 해보니, 내가 느낀 것은 기시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에 수록된 스티븐 킹의 단편 중 몇 편은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영화로 감상한 작품들이다. 유년의 기억 어디쯤, 어느..
공교롭게도 근 두 달 사이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엔 글쓰기를 다룬 책이 세 권이나 된다. , , 가 그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구입해 여전히 책장에서 읽을 이를 기다리고 있는 몇 권(국어 맞춤법을 다룬 책과 여타 실용적인 목적의 글쓰기 책 등)을 더한다면 마치 내가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한 명의 착실한 학생처럼 느껴질 정도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글쓰기를 위한 조언은 앞에 언급한 세 권의 책으로 충분히 얻었다고 믿는다. 세 권의 책이 각기 다른 글쓰기 분야를 다루는 점에서도 그렇고 취미생활의 일환으로서의 글쓰기라면 이 정도 선에서 도움말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더해 스티븐 킹의 까지 읽은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 내 머리 속 어느 곳이 부추긴 충동의..
요사이 대형 할인마트의 식품코너에 가보면 그럴듯한 문구나 수식어로 포장된 제품들이 눈에 자주 띈다. 이를테면 특정 영양성분을 더한 음료수, 콜레스테롤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과자, 염분만 줄이고 맛은 그대로라는 가공식품 등, 이런 제품들은 지금의 소비자들이 먹을 거리를 고를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각종 암, 심장질환, 비만과 당뇨 등 20세기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러한 질병으로 현대인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진열되어 있는 식품들의 포장지에서 ‘건강’을 상징하는 문구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건강을 고려하는 식품들이 그리 많고 또 그것이 모두 소비자의 수요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왜 이른바 ‘현대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
글을 ‘쓴다’는 표현보다 ‘끼적댄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전자가 말 그대로의 뜻이라면 후자는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쓰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자신의 행위를 조금 낮춰 일컫는 느낌을 준다. 두 단어를 굳이 구별해 쓰는 이유는 내가 이 장소에 남기는 글들이 직업적 투철함이나 견고한 사명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미의 일환으로 쓰여지는 것이며, 그래서 그 결과물이 완성도의 편차를 보이더라도 무겁게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전 방어막을 쳐놓기 위해서이다. 부담 갖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만큼 가벼운 글을 ‘끼적대’지 않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없지는 않다. 그때가 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문자를 배열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이 작은 공간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순간엔 항상 자신의 고갈된 상상력과 마주하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단 두 종류의 술어, 즉 ‘재미있다’, ‘재미없다’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좀 더 길게 늘려 쓰는 과정에서 영화가 재미있는 원인을 찾아보거나 또는 지루했던 까닭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던져주는 소재의 상이함은 달라도 거의 모든 글이 비슷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이러해 좋았더라.’ 혹은 ‘그리하여 나빴더라.’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좀 더 색다른 글, 영화에 대한 좋고 싫음의 주관적 판단 외에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내는 글을 써보고 싶지만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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