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이를 단단히 씹으며 내뱉는 대사들. 높은 음이 전혀 섞이지 않은 낮은 목소리. 잔뜩 찌푸린 미간. 의 까다로운 노인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온몸으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신부를 미덥지 않게 여기고 생전의 아내가 그에게 부탁한 고해성사도 할 생각이 없다. 아들들은 물론 손자들과의 관계 또한 딱딱하기 그지없으며 베트남 흐멍족인 이웃들과 간단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단단한 고집에 욕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노인네를 주변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이 코왈스키의 삶에 이웃집 흐멍족 소년 타오(비 뱅)와 그의 누나 수(아니 허)가 끼어든다. 베트남계 불량배와 흑인 건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
글을 ‘쓴다’는 표현보다 ‘끼적댄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전자가 말 그대로의 뜻이라면 후자는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쓰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자신의 행위를 조금 낮춰 일컫는 느낌을 준다. 두 단어를 굳이 구별해 쓰는 이유는 내가 이 장소에 남기는 글들이 직업적 투철함이나 견고한 사명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미의 일환으로 쓰여지는 것이며, 그래서 그 결과물이 완성도의 편차를 보이더라도 무겁게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전 방어막을 쳐놓기 위해서이다. 부담 갖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만큼 가벼운 글을 ‘끼적대’지 않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없지는 않다. 그때가 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문자를 배열하고..
USB허브가 필요해서 둘러보다가 발견한 제품. SP-M1000은 USB허브역할뿐 아니라 각종 휴대기기들도 충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물건이다. 아니 원래 충전기로만 쓸 수 있는 버전인 SP-M2000이 있으니 이 제품은 멀티충전기에 USB허브 기능이 추가되었다 말하는 게 옳겠다. 충전 가능한 기기는 휴대폰, 아이팟, MP3P, 닌텐도 DSL, PSP, PMP 등인데 그 중 휴대폰과 아이팟, MP3P, NDSL, PSP를 충전할 수 있는 케이블들이 제품에 포함되어 있다. 즉 SP-M1000 하나만 있으면 각 기기들을 멀티콘센트에 줄줄이 꽂을 필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 휴대기기들을 모두 갖고 있다는 가정하에. 나로선 본래 USB허브로 사용하려고 구입한 제품이기에 충전기능은 크게 필요가 없었지만 휴대폰과 ..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이 작은 공간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순간엔 항상 자신의 고갈된 상상력과 마주하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단 두 종류의 술어, 즉 ‘재미있다’, ‘재미없다’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좀 더 길게 늘려 쓰는 과정에서 영화가 재미있는 원인을 찾아보거나 또는 지루했던 까닭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던져주는 소재의 상이함은 달라도 거의 모든 글이 비슷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이러해 좋았더라.’ 혹은 ‘그리하여 나빴더라.’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좀 더 색다른 글, 영화에 대한 좋고 싫음의 주관적 판단 외에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내는 글을 써보고 싶지만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같은..
얼마 전에 읽었던 와 비슷한 책이다. 책의 내용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장 지글러가 기아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알기 쉬운 어조로 말하는 것처럼 의 저자 스탠 콕스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수많은 원인들을 열거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두 저자가 다루는 문제들이 자본주의라는 세계경제 틀 안에선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책을 읽은 후 개별적인 독자가 궁극적인 해결책에 접근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빠진다는 측면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은 얼핏 환경문제만 다루는 것 같지만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저작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지배자인 거대한 자본권력이 환경과 하위계급을..
어느 순간부터 과도한 디스토션 기타사운드가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줄어들었음을 인정하는 편이 낫겠다. CD를 구입하는 것도 하나의 앨범을 줄곧 들으며 다니는 것도 어린 시절에 비해서 확실히 드문 일이 되었으니까. 메틀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은 다름이 아니라 그것이 내 주된 감상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리라. 이제는 앨범이 나오는 족족 레코드가게로 찾아가 마주했던 드림 씨어터, 메탈리카, 메가데스 같은 이름이 내 입에서 오르내린 지도 오랜 일 같다. 뭐, 취향은 언제나 돌고 도는 것이니까 언젠가 또 그때의 한 시점으로 회귀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음악에 한해서라면 좀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한 장의 앨범을 만났다. 90년대 중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