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 아직도 20대의 성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브루스 디킨슨의 1997년도 솔로앨범 [Accident Of Birth]다. 브루스 디킨슨은 아이언 메이든 시절 이미 한 장의 솔로앨범([Tattooed Millionaire])을 발표한 바 있고, 93년 솔로로 독립하면서 두 번째 앨범 [Balls To Picasso]을 내놓았다. 이때 만난 멤버들이 Tribe Of Gypsies의 Roy Z, Eddie Casillas, David Ingram 등인데, 브루스의 이후 앨범들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거의 밴드형식의 고정멤버들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잠시 다른 세션들로 완성한 [Skunkworks]가 96년에 발표되었고, 그의 솔로 커리어로서의 네 번째 앨범인 [Accid..
1977년생의 Gavin DeGraw는 아티스트로서는 조금 늦은 나이인 2001년에 인디씬을 통해 첫 앨범([Gavin Live])을 발표했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정식 데뷔앨범을 내놓기 전까지 그는 뉴욕에서 자라나 맨해튼의 소규모 클럽들에서 주로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개빈 드그로가 동갑인 싱어송라이터 John Mayer와 비슷한 시기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수업을 받았다는 것이다. 음악색은 서로 약간 다르지만 나이도 같고 재능있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고, 그래서 가끔은 비교도 된다. 존 메이어가 기타를 기반으로 노래를 만들고 연주를 해나간다면, 개빈 드그로는 피아노를 중심으로 노래를 부른다. 존 메이어의 목소리는 담백한 멜로디를 차분하게 훑는 반면, 개빈 드그로의 ..
기관총 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헬리콥터 소리가 한차례 지나가면, 허무한 기타 아르페지오가 시작된다. 단순하면서도 무거운 분위기를 함축하는 클린톤의 아르페지오가 고통 받는 병사의 독백과 만나는 전반부. 그리고 마침내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절규가 6연음의 베이스 드러밍, 헤비리프와 만나는 후반부에 이르면 듣는 이의 감정도 최고조에 이른다. 가사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역설적이지만, 어쨌든 헤비메탈의 이 놀라운 쾌감! 『...And Justice For All』(1988)의 대표곡인 “One"이 1992년의 샌디에이고(Sports Arena) 라이브 버전으로 실린 이 싱글은 메탈리카의 한정판 박스세트 『Live Shit: Binge & Purge』(1993)에서 발췌된 곡들로 채워져 있다. 수록곡은 모두 네 곡으..
경계를 무시한 장르의 혼합. ‘하이브리드’는 활용당할 대로 당한 대중음악의 마지막 출구 같다. 물론 잊혀 질 때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또는 반복될) 장르의 순환도 그 해법이 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White Zombie의 프런트맨이었던 Rob Zombie의 음악은 헤비메탈과 펑크, 그리고 인더스트리얼과 스트링사운드(물론 프로그래밍된)가 혼합된 기묘한 ‘하이브리드’다. 게다가 공포영화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그의 캐릭터까지. 어느새 호러무비계의 재능 있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롭 좀비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전업해서는 곤란하다. 그건 그가 들려주는 음악이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던져주는 기괴함의 정서는 분명 공포라는 감정에 기대고 있지만, 때론 코믹해보이기까지 하다. 이건 마릴린 맨슨이 보여주..
사람의 취향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의 기분이나 상황에 의해 수시로 바뀔 만큼 유연하다. Rock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취향의 보수성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또 그것이 그 안의 어느 한 세부장르만을 고집할 만큼 견고하지도 않다. 또 어느 한 뮤지션에 집착하는 그런 고집도 나에겐 없다. 어쩌면 열정의 부재인지도 모르지만, 난 이걸 ‘취향의 순환’이라 부른다. 즉 들어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취향은 그때그때마다 변하게 마련이다. 오늘은 이 밴드의 음악이 한없이 좋다가도 내일은 저 밴드의 음악에 푹 빠지는 소심한 배신. 또 누가 알겠는가? 내일은 힙합앨범을 듣고 있을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 이것을 어느 하나의 아티스트에 국한하더라도 얘기는 마찬가지다. 즉 ..
1998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해서, 딜레이를 잔뜩 걸어놓고 짐짓 묘기를 보여주듯 기타솔로를 들려주던 마티 프리드먼의 모습이 여전히 떠올려질 정도다. 메가데스의 첫 내한공연은 사실상 내 생애 최초의 해외 아티스트 공연관람이었기 때문에, 공연 사운드의 질을 떠나(그리 좋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 황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공연은 앨범 『Cryptic Writings』(1997) 투어의 일환이었는데, 공연에 임박해서 구입한 그 앨범의 가사를 공연 전날 힘겹게 외우던 모습이 생각난다. 공연 당일에는 멤버들이 연주하는 모습만 봐도 설렌 나머지 결국 한 부분도 따라하진 못했지만(기억력 탓이 아니라고 절대 주장). 메가데스의 98년 공연에 얽힌 기억은 하나가 더 남아있다. 조명이 꺼지면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