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같아선 피곤에 뻗어 누운 밤 시간, 머리맡에 둔 한 권의 책 내용을 동 트기 전까지 뇌로 자동 전달해 주는 기계를 발명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하루 종일 시달리다 이 고요한 시간만큼은 휴식을 취하고픈 뇌의 고충을 외면하기 어려울뿐더러 마치 인체를 활용한 데이터전송 같은 비인간적인 개념을 떠올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아 기꺼이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진심으론, 뇌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인간의 신체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누군가 그런 기계를 만들어 준다면 잘 써줄 의향은 있다. 물론 구매 시 무이자 할부 6개월을 넘기지 않아도 될 만큼 가격 장벽이 낮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책 읽을 시간, 더 정확히는 그럴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유치한 투정을 해보려다 이런 어이 없는 상상을 했다. 그것은 ..
아사다 지로의 단편집이다. 영화 을 보고 원작을 읽고 싶어 들춰본 책이다. 책 속엔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이 첫 번째로, 의 원작인 가 두 번째 이야기로 실려 있다. 뿐 아니라 도 영화로 먼저 접했다. 한때 히로스에 료코를 참 좋아해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 드라마 등을 보곤 했는데 도 그 리스트에 끼어 있었다. 영화 은 그러니까 아사다 지로나 다카쿠라 켄의 이름값 덕분에 본 건 아니었다. 영화를 본지가 오래되어 세밀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역사의 따뜻한 난로 곁에 앉아 흰 눈이 쌓인 철로 주변을 가만히 바라보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전해지는 뭉클한 감정은 영화나 원작소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영화는 소설의 장면 장면을 충실히 화면에 담으려 했던 것 같고, 아사다 지로의 문장 또한 머..
* 스포일러 포함 소년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성숙한 여인의 육체를 경험하고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화를 나누다 집에 돌아와 온통 그녀의 모습으로 가득한 꿈을 꾼다. 그것은 불과 15년을 살아왔을 뿐인 그에게 마치 거대한 우주의 시작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이 낯선 감정의 정체는 뭘까. 20년의 나이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소년은 그녀를 사랑했다. 의 처음 부분, 그러니까 미하엘과 한나가 서로 알게 된 후 사랑을 나누고 책을 읽고 하는 만남을 큰 장애물 없이 계속해 나갈 때, 나는 이 이야기가 금기를 깨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여행을 하다 머무는 숙소에서 그..
시체가 발견된다. 옷은 벗겨져있고 지문은 모두 지워진 상태. 얼굴도 신원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망가져있다. 그러나 단서는 남아있는 법. 피해자가 사용한 듯한 자전거에서 지문이 발견된다. 자전거는 도난 된 것으로 판명되고 근처엔 소각되다 만 피해자의 옷가지가 있다. 갑자기 사라진 투숙객을 의심스럽게 여긴 어느 여관주인이 신고를 해와 경찰은 지문을 대조해본다. 일치한다. 피해자의 이름과 직업, 과거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이제 밝혀진 단서들을 조합해 범인을 잡아내야 한다. 죽은 이와 관련 있던 사람들을 검색하고 살해동기가 있을 법한 인물들을 추려낸다. 범인은 언젠가 밝혀지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은 마치 콜롬보 형사의 수사일지에서처럼 독자에게 범인을 미리 알려주며 시작한다. 이 추리소..
이번에야 비로소 스티븐 킹의 책을 제대로 읽은 셈이지만, 를 읽는 내내 마치 그만의 세계를 미리 체험해본 듯한 묘한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니 확실히 스티븐 킹의 여타 작품들을 이미 숱한 영상매체를 통해 먼저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색이 원작을 그대로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믿음 아래, 몇 편의 영화를 본 것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음산하고 축축한 특유의 촉감만은 원본과 복제 모두 공유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책을 읽고 관련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좀 해보니, 내가 느낀 것은 기시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에 수록된 스티븐 킹의 단편 중 몇 편은 내가 인지하기도 전에 벌써 영화로 감상한 작품들이다. 유년의 기억 어디쯤, 어느..
지금이야 mp3 파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각종 웹사이트들이 다양한 음악소식을 전하고 있어 관심있는 음악정보를 만나기가 직간접적으로 수월해졌다.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된 밴드의 음악을 미리 들어보거나 그들의 홈페이지에 들러 바이오그래피나 디스코그래피를 살펴보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목록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이다. 음악에 조금 깊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때는 9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그전에는 차트에서 활약하는 몇몇 가요와 팝만을 들어왔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음악 듣는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불현듯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뇌리에 파고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전이 그저 주어진 음악을 받아먹었던 때라면 그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 듣기 시작했을 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