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근 두 달 사이 내가 읽었던 책들 중엔 글쓰기를 다룬 책이 세 권이나 된다. , , 가 그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구입해 여전히 책장에서 읽을 이를 기다리고 있는 몇 권(국어 맞춤법을 다룬 책과 여타 실용적인 목적의 글쓰기 책 등)을 더한다면 마치 내가 글쓰기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한 명의 착실한 학생처럼 느껴질 정도다.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글쓰기를 위한 조언은 앞에 언급한 세 권의 책으로 충분히 얻었다고 믿는다. 세 권의 책이 각기 다른 글쓰기 분야를 다루는 점에서도 그렇고 취미생활의 일환으로서의 글쓰기라면 이 정도 선에서 도움말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기에 더해 스티븐 킹의 까지 읽은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닌 내 머리 속 어느 곳이 부추긴 충동의..
요사이 대형 할인마트의 식품코너에 가보면 그럴듯한 문구나 수식어로 포장된 제품들이 눈에 자주 띈다. 이를테면 특정 영양성분을 더한 음료수, 콜레스테롤이 함유되지 않았다는 과자, 염분만 줄이고 맛은 그대로라는 가공식품 등, 이런 제품들은 지금의 소비자들이 먹을 거리를 고를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각종 암, 심장질환, 비만과 당뇨 등 20세기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러한 질병으로 현대인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진열되어 있는 식품들의 포장지에서 ‘건강’을 상징하는 문구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건강을 고려하는 식품들이 그리 많고 또 그것이 모두 소비자의 수요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데도 왜 이른바 ‘현대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주위..
글을 ‘쓴다’는 표현보다 ‘끼적댄다’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전자가 말 그대로의 뜻이라면 후자는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쓰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자신의 행위를 조금 낮춰 일컫는 느낌을 준다. 두 단어를 굳이 구별해 쓰는 이유는 내가 이 장소에 남기는 글들이 직업적 투철함이나 견고한 사명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취미의 일환으로 쓰여지는 것이며, 그래서 그 결과물이 완성도의 편차를 보이더라도 무겁게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전 방어막을 쳐놓기 위해서이다. 부담 갖지 말고 마음을 편히 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는 만큼 가벼운 글을 ‘끼적대’지 않고 설득력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없지는 않다. 그때가 올는지 모르지만 이곳에 문자를 배열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그 느낌을 간직하려고 이 작은 공간에 뭔가를 끼적거리는 순간엔 항상 자신의 고갈된 상상력과 마주하곤 한다. 내가 쓰는 글은 기본적으로 단 두 종류의 술어, 즉 ‘재미있다’, ‘재미없다’로부터 출발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을 좀 더 길게 늘려 쓰는 과정에서 영화가 재미있는 원인을 찾아보거나 또는 지루했던 까닭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영화가 던져주는 소재의 상이함은 달라도 거의 모든 글이 비슷한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이러이러해 좋았더라.’ 혹은 ‘그리하여 나빴더라.’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좀 더 색다른 글, 영화에 대한 좋고 싫음의 주관적 판단 외에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끄집어 내는 글을 써보고 싶지만 언제나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같은..
얼마 전에 읽었던 와 비슷한 책이다. 책의 내용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장 지글러가 기아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그 해결책을 알기 쉬운 어조로 말하는 것처럼 의 저자 스탠 콕스도 환경문제를 야기시키는 수많은 원인들을 열거하고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두 저자가 다루는 문제들이 자본주의라는 세계경제 틀 안에선 상당히 해결하기 어려운 것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도, 책을 읽은 후 개별적인 독자가 궁극적인 해결책에 접근하기 어려운 무력감에 빠진다는 측면에서도 두 책은 비슷하다. 은 얼핏 환경문제만 다루는 것 같지만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 저작은 자본주의의 실질적 지배자인 거대한 자본권력이 환경과 하위계급을..
식당에 가면 과식의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편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핀잔을 준다. 그 핀잔의 내용은 음식을 조금 남기는 편이 먹을 것에 대한 초연한 태도를 드러내 먹는 이의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농담 섞인 것에서부터 이런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습관이 될 경우 맞을 수 있는 내 건강상의 문제에 대한 걱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항상 음식을 다 먹으려 하지 말고 적당히 조절하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남겨진 음식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작된 이 행위가 우려했던 대로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나의 이런 행동이 저 멀리 아프리카 남부 어느 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