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를 다한 아이팟 클래식, 디지털 기기의 효용 가치

아이팟 클래식 160GB와의 첫 만남, 애플 제품 애호가의 시작

 

2011년, 중국 상해의 애플 매장에서 아이팟 클래식 160GB(6세대, 2009년 모델 추정)를 구입했다. 약 13년 전의 일이다. 아래는 당시 그와 관련하여 쓴 글이다.

 

 

애플 아이팟 클래식 160g (Apple iPod Classic 160g)

아이폰을 사용한 이후부터 기존 mp3p 활용도가 떨어져 모두 서랍 속에 잠자고 있었다. 그러다 iAudio 7은 다른 주인을 찾아 갔고, A846도 다른 주인을 찾아 떠날 뻔 했으나 다행히(?) 아직까지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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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아이폰 4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음악 감상에 꼭 필요해서 아이팟 클래식을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아이폰 4를 만지작거리며 애플 기기에 대한 호감이 생기던 때였다. 아이폰 4와 아이팟 클래식을 같은 해에 구입한 일은 그저 애플 제품 애호가가 되어가는 과정의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뚜렷한 용도보다 애플 제품이었기 때문에 아이팟 클래식을 구입한 것이라는 고백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이팟 클래식은 그것을 구매하기 전까지 음악 감상용으로만 사용하던 여러 MP3 플레이어들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기기였다. 아이팟 클래식 구입 전후로, 기존 MP3 재생 기기들은 모두 중고로 판매했다. 

 

아이팟 클래식 160GB
2011년 구입한 아이팟 클래식 160GB

 

아이팟 클래식 160GB를 맞이했을 때 무엇이 마음에 들었을까?

 

클릭 휠(Click Wheel)과 커버 플로우(Cover Flow)는 아이팟 클래식의 시그니처 같은 요소이다. 

 

아이팟을 한 손에 잡고 엄지 손가락으로 클릭 휠을 섬세하고 매끄럽게 컨트롤하는 쾌감과 꽉꽉 눌러 담은 수많은 음원을 커버 플로우로 자유롭게 탐색하는 즐거움이 자꾸 아이팟 클래식에 손이 가게 만들었다. 

 

당시로서 대용량인 160기가바이트라는 저장 공간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 요소였다. 

 

그때 사용 중이던 아이폰 4는 용량이 32GB였는데, 모아둔 CD로부터 추출한 음원과 아이튠즈에서 구입한 음원이 쌓여 이미 32GB로는 내가 가진 음반을 모두 담을 수 없었다. 

 

아이팟 클래식의 160GB로는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음원의 저장이 가능했다.

 

아이팟 클래식에 모든 음반을 넣어 놓고 셔플 버튼으로 랜덤하게 재생하는 음악 감상의 재미가 쏠쏠했다. 셔플로 음원을 재생하다 생소하지만 귀를 잡아끄는 곡이 나타나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기뻤다. 

 

 

아이팟 클래식 160GB의 업그레이드와 생명 연장

 

예전에 남긴 기록을 보니 아이팟 클래식에 세 번의 변화를 주었다. 한 차례의 독 스피커 구매와 두 번의 하드 디스크 교체가 그것이다.

 

2014년에는 아이팟 클래식 전용으로 사용할 독(dock) 스피커를 구입했다. 야마하(Yamaha) TSX-W80라는 제품이다. 내 기억에는 아이팟 클래식을 마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입한 줄 알았는데, 기록을 찾아보니 아이팟 클래식 구매 약 3년 후의 일이었다.

 

야마하(Yamaha) TSX-W80 독 스피커
야마하(Yamaha) TSX-W80 독 스피커. 다크 퍼플(Dark Purple) 컬러 모델이다.

 

야마하 TSX-W80은 무선 독과 스피커로 구성된 제품이다. 무선 독은 애플 30핀 단자로 아이팟 클래식과 연결할 수 있다. 아이팟을 꽂은 무선 독은 스피커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수도, 스피커 위에 거치할 수도 있다. 독과 스피커가 무선으로 연결되어 원격으로 재생 컨트롤이 가능하다.

 

이때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 아이팟 클래식과 연결된 야마하 독 스피커는 단순한 스피커 이상의 존재였다. 나는 자기 전 항상 음악을 나즈막히 틀어놓는데, 당시 스피커로 은은하게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잠에 드는 것이 무척 달콤했다. (이 잠들기 전 습관은 몇 년 후 야마하 독 스피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면서 아이패드가 이어받았다.) 

 

아이팟 클래식을 약 4년 정도 사용했던 2015년, 하드 디스크를 교체했다. 사설 업체를 통해서였다. 교체에 대한 기록만 있고 왜 교체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기의 오작동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드 디스크 교체는 2018년에 한 번 더 이루어진다. 그러나 지난번과 같은 HDD 끼리의 교체가 아니라 SSD로의 교체였다. 교체 SSD의 용량은 256GB. 

 

이때는 이미 160기가바이트라는 원래 용량이 당시 내가 가진 음반을 모두 담기에 부족해진 후였다. 저장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티스트와 앨범을 선별하여 동기화 하곤 했는데,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256GB 용량의 SSD로 바꾸면 모든 음원을 넣을 수 있었다. (이때 그동안 한 번도 교체하지 않았던 배터리까지 교체했다.)

 

아이팟 클래식과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기기를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독 스피커도 구매하고, 고장에 대한 수리와 업그레이드도 거쳤다. 아이팟 클래식 입장에서는 마치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번갈아가며 본 것 같다. 

 

 

점점 손에서 멀어져간 아이팟 클래식 160GB, 디지털 기기의 수명

 

2018년 그렇게 업그레이드를 마쳤음에도 아이팟 클래식의 사용 빈도는 점점 낮아졌다. 

 

그렇게 된 데에는, 2022년 512GB의 아이폰 12 프로 구입이 결정적이었다. 512GB의 용량으로 점점 커지던 내 음원 라이브러리를 아이폰에 모두 담을 수 있게 되자, 아이팟 클래식을 만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적어진 것이다. 

 

아이팟 클래식과 아이폰 12 프로
아이팟 클래식과 아이폰 12 프로

 

2024년 현재, 내 손에 들어온지 약 13년이 지난 아이팟 클래식은 내 책상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다. 기기를 서랍에 넣어두지 않은 것은, 그랬다가는 배터리가 방전된 것도 모른 채 방치하게 될까 봐서다. 

 

이제 간혹 기기를 충전할 때를 제외하면,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듣는 일은 매우 드물다. 예전 아이팟 클래식과 야마하 TSX-W80가 하던 일을 요즘에는 아이폰과 블루투스 스피커가 대신한다.

 

한때 삶에 큰 위안을 주었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디지털 기기의 쓰임새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어떤 기기를 살 때 언젠가 그 기기의 효용 가치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디지털 기기의 끝을 이성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해도, 적어도 당장 내일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2011년 처음 만난 내 아이팟 클래식은 아직 하드웨어 혹은 소프트웨어적인 끝을 맞이하지 않았음에도, 그 주요 용도를 다른 무엇인가가 대체하면서 책상 구석에서 잠자는 기기가 되었다.

 

현재 음악 감상의 도구로 열심히 사용 중인 아이폰 12 프로에게서는 느끼지 못하는 아련함을, 아이팟 클래식을 바라보면서 느낀다. 지나친 의인화일까?

 

아이팟 클래식 사용 빈도의 하락에서 인생의 단면이 엿보이기도 하고, 아이팟 클래식 자체가 아니라 기기와 함께 지나간 세월이 아쉬워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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