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간의 화제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이 영화에 대해 끼적거리려다 그만두기를 여러 번, 그새 시간은 한참이나 지났다. 이유는 뭐, 이미 할 얘기는 다 나온 마당에 중언부언 하기도 그렇고, 영화에 대한 느낌이 첫 번째 감상과 두 번째 감상 사이에서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뭔가 잘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랄까. 내가 본 ‘판도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거울. 혹은 새로운 오락거리로 다가온 단순한 환상. 관객들의 현실 탈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는 매우 정형화된 이야기에 보는 이의 현실 감각을 마비시킬 만큼 탁월한 시각효과를 얹힌 롤러코스터 영화다. 아니, 반대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비주얼을 뼈대로 하고 거기에 살짝 스토리를 더했다는 편이 옳겠다. 를 보며 든 첫 번째 생각은,..
누군가를 사랑… 아니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의 표정이나 습관, 심지어 단점까지도 좋아진다. 그 모든 것이 상대방을 이루는 일부이기 때문이리라. 대상이 되는 그녀는 하나의 완전체. 그녀를 향한 호감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이루는 바로 그때, 우리는 그가 어떤 흠을 가지고 있든 괘념치 않게 된다. 마치 신체기관의 일부처럼 그 단점들이 없다면, 좋아하는 그녀(혹은 그) 역시 존재할 수조차 없으니까. 하나님 부처님, 미천한 저에게 이토록 과분한 여인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잘 믿지 못하는 이유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지는 바로 그 시기 때문에 말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아름답던 그녀의 표정이 평범한 것으로 절하되더니, 때로는 그것이 급기야 싸움의 빌미가 되기..
F. 게리 그레이의 신작, 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의 감정은 볼 일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화장실을 떠나야만 하는 어느 불행한 사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할 지도 모른다. 미국 법 체계의 불완전성을 떠보려는 시도가 살인자의 손에 가족을 잃은 한 가장의 사이코드라마로 확장되더니, 이내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테러리스트의 복수극으로 발전하다 끝내 허무한 엔딩에 종착한다. 이런 저런 갈래로 피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의 가능성들이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한 채 관객을 어정쩡한 길 한복판에 서 있게 만든다. 영화가 기상천외한 테러의 전시장이 되려 했는지, 세상을 향해 복수의 X침을 날릴 수 밖에 없는 비정한 부성(父性)을 강조하려 했는지, 아니면 출세를 목표로 한 현실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된 미 법조계를 풍자하려 한 ..
는 와 더불어 2009년 최대 기대작이었다. 대중적 인지도와 비평적 성취를 동시에 이룬 이 두 감독의 신작은 언제나 팬들을 설레게 한다. 여행 전의 두근거림이 집에 돌아온 후의 피곤함에 늘 앞서 있듯이, 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품었던 기대감 자체가 이미 하나의 즐거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두 감독이 아직 만들어 내지 않은 그들 생애 최고의 걸작을 고대하는 것은 영화 팬들의 기쁨이다. 일찌감치 재야의 종소리와 함께 2009년을 떠나 보낸 지금, 개인적으로 가 아쉬웠다면 는 그와 정반대의 인상을 준 영화다. 스스로의 기대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때 느끼는 안도와 환희. 영화 는 을 되새김질 하게 만든다. 도심을 벗어난 변두리를 배경으로 탄탄한 이야기 안에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가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 감독 ..
아이도 없이 부인마저 먼저 보낸 쓸쓸한 노인 칼(애드워드 애스너)에게 삶의 낙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이주협상에 응하지 않은 결과로 재개발지역 한 가운데 마치 낯선 혹처럼 뚝 서있는 자그마한 집 하나. 하지만 이 볼품없는 집은 아내 엘리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담겨있는, 그에겐 가장 소중한 공간이다. 그 무엇보다 스스로의 이권을 먼저 챙기려는 이들의 머리 속에 이 고집 세고 무뚝뚝한 노인을 향한 자비 따윈 없다. 칼은 그들에게 있어 눈엣가시 같은 존재. 결국 집을 떠나야만 할 위기에 처한 칼은 기막힌 도전을 한다. 아내와 함께 늘 가보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미지의 파라다이스 폭포를 향해 집을 띄우는 것. 수많은 헬륨 풍선을 달고 집이 통째로 띄워지..
에 대한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비하면 은 개봉 후 찬밥 신세나 다름 없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주위에선 짧은 평들을 대신해 욕설이 흘러나왔다. 분명 그들은 의 속편을 기대했으리라. 반면, 함께 영화를 봤던 친구와 나는 말 없이 극장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충격이었다. 속으론 아마 둘 다 이렇게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작품’이야! 은 결코 선혈 낭자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마치 한 장의 끔찍한 스냅사진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불쾌하게 옭아매는 영화다. 박찬욱의 절제된 연출 덕분에 모순투성이의 인간사가 오히려 더욱 적나라하게 보는 이를 파고든다. 선한 자와 악한 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 폭력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되고 마는 이 세계.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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