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영화를 보다 보면 간혹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을 발견할 때가 있다. 멀리는 이, 가깝게는 가 떠오른다. 물론 흥행수치만으로 그 영화적 가치를 판가름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고, 한 작품에 대한 개개인의 감상은 그 개개인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니 이 또한 쉽게 단정짓기 어려운 문제다. 단지 시리즈의 시작이 되었던 작품에 함몰되지 않고 그 나름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것이, 이 영화들을 성공적인 속편이라 칭할 때 가장 그럴듯한 부연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하 ) 역시 그런 영화였다. 1편 가 관객에게 숨막히는 스릴을 선사함과 동시에 마치 공포영화처럼 처절한 탈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면, 는 놀라운 시각효과를 동반한 폭발적인 액션을 바탕으로 간간이 유머를 배치하거나 끈적한 버디무비 같은 ‘쿨’..
1편에서 덩치만 크고 머리 쓸 줄 모르는 멍청한 캐릭터로 전락했던 세이버투스(리브 슈라이버)가 울버린(휴 잭맨)과 애증이 섞인 라이벌이 되어 돌아왔다. 영화는 시리즈 2편에 등장했던 스트라이커 대령을 극의 대척점에 놓고 또 하나의 인기 캐릭터 사이클롭스마저 간간이 등장시키며 자신이 이전 시리즈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완전히 새로운 얘기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이내 영화는 인간의 육체와 CGI가 충돌하는 격전의 무대가 된다. 울버린의 아다만티움 손등뼈는 기존 시리즈에서의 그것에 비해 더욱 크고 빛나며 단단해 보인다. 개빈 후드는 이 성공적인 시리즈의 외전을 쉬지 않고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내는 짐승들의 근육질 액션 판타지로 그려냈다.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 크고, 빠르고, 강한 남성들의 액션을 포착하는 데 주력..
* 스포일러 포함 가까운 미래. 달에서 홀로 지구로 전송할 에너지원을 채취하는 샘(샘 록웰)은 3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드디어 2주만 견디면 아름다운 아내와 보석 같은 딸아이가 그를 기다리는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기지 안의 살림꾼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와의 건조한 대화도 이젠 끝이다. 이제 진짜 인간이 살아있는 지구로 가는 거다. 그러던 어느 날 에너지 채석 기계 점검을 위해 기지 밖으로 나간 샘은 어둠 속에서 환상을 본다. 순간 채석 기계와 충돌, 정신을 잃는다. 기지 안에서 깨어나는 샘. 누군가에 의해 구조된 것일까? 정신을 차린 샘은 고장 났다던 실시간 영상통화를 통해 본부와 연락하는 거티를 발견한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이유로 움직임마저 통제된 그는 드디어 모..
눈 앞에선 변신로봇들이 화면을 찢고 튀어나올 것만 같다. 폼 나는 스포츠카나 날쌘 제트기가 그 수만 개의 부품들을 정교하게 움직이며 위풍당당한 거대로봇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어린 시절 마징가 Z, 혹은 태권브이의 조종석을 노렸던 그 코흘리개 소년은 범블비를 가진 샘 윗위키(샤이아 라보프)가 얄밉도록 부럽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활한 옵티머스 프라임이 보다 강력한 파츠로 무장하고 폴른을 박살(!)낼 땐 영화 속 선과 악을 나눈 완벽한 이분법의 고루함 따위 잊은 지 오래다. 다 자랐다고 믿었던 소년은 어느새 화면 속 로봇 안에 들어 앉은 여덟 살 무렵의 자신의 모습을 본다. 블록버스터는 더욱 더 노골적으로 거대함을 앞세운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로 사이즈의 중요함을 역설할 ..
예기치 못한 상황과 우연한 사건이 잔뜩 벌어지는 TV 드라마를 ‘막장’이라 부르곤 있지만, 실은 우리의 삶이 더욱 우연에 노출되어 있다.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청소년 시기의 어느 날, 저녁때까지 넉넉히 남은 시간에 친구를 초대해 침을 꿀꺽 삼키며 성인 비디오를 트는 순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부모님을 맞이하는 것도 우연, 길가다 스타일 좋고 나보다 키도 한 뼘쯤 더 큰 남자의 팔짱을 낀 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전 애인을 마주치는 것도 우연, 3주 연속 로또 5등에 당첨되어 기약 없는 일등 당첨을 상상하게 하는 일도 어찌 보면 우연의 산물이다. 근데 이렇게 삶을 지배하는 우연이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만 들어가면 맥을 못 춘다. 개연성과 현실감을 들먹이며 퇴출시켜야 하는 못된 녀석이 된다. 그래서 ..
시종일관 이를 단단히 씹으며 내뱉는 대사들. 높은 음이 전혀 섞이지 않은 낮은 목소리. 잔뜩 찌푸린 미간. 의 까다로운 노인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온몸으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 아내의 장례식에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신부를 미덥지 않게 여기고 생전의 아내가 그에게 부탁한 고해성사도 할 생각이 없다. 아들들은 물론 손자들과의 관계 또한 딱딱하기 그지없으며 베트남 흐멍족인 이웃들과 간단한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단단한 고집에 욕과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이 노인네를 주변인들이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던 어느 날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이 코왈스키의 삶에 이웃집 흐멍족 소년 타오(비 뱅)와 그의 누나 수(아니 허)가 끼어든다. 베트남계 불량배와 흑인 건달들에게 괴롭힘 당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