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성채를 벗어나 부다 왕궁(Buda Castle, Budavári Palota) 쪽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 속에서 왕궁까지 걸었던 경로가 희미하다. 왕궁 주변에 위치한 날개를 편 투룰(Turul) 상과 말을 탄 외젠 왕자(Prince of Savoy-Carignan, François Eugène)의 청동상을 본 기억이 또렷한데 거기까지 가는 순간에 대한 기억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왜 잊은 걸까. 인도 바닥의 조각난 보도블록이 눈에 잠깐 스친 것도 같고, 살갗에 닿는 차가운 바람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환한 볕도 생생한데, 어떤 경로로 외젠 왕자 앞에 서게 되었는지는 떠올려지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그 망각의 이유를 찾다 보니, 한 생각이 떠올랐다.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날 잠자기 전 구상한 다음날의 ..
매주 수요일 아침이면 출근 준비 와중에 맥북을 켠다. 게슴츠레 뜬 눈, 눈꺼풀 틈으로 뿌옇게 보이는 화면. 눈 앞이 보이든 말든 손은 익숙한 동작으로 아이튠즈를 실행한다. 보관함을 클릭하고 팟캐스트 메뉴를 선택한다. 그 중 한 방송의 새 에피소드를 받기 위해 업데이트 아이콘을 누른다. 위장과 소장을 알코올의 무법천지로 만든 날이 화요일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수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가 제정신임을 알게 된 경우에는, 대개 매주 이 기상 후 행위를 반복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운영하는 '빨간책방'에 들르기 위해서다. 최근 한 해 동안 그 전에 비해 많은 책을 구입했다. 내 길지 않은 인생사를 돌이켜 보건대, 근 몇 개월간은 좀 무리한 것도 같다.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의 옆구리가 불룩하게 느껴질 만큼 꾸..
요즘 내가 책을 구입하는 경로는 아래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다. 1) 회사의 도서지원금으로 책을 구입할 때다. 이땐 예스24를 이용한다. 2)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구입할 때다. 알라딘을 통해 도서를 구입한다. 3) 전자책을 구입할 때다. 초기엔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구입하다, 최근엔 리디북스를 애용한다. 4)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산다. 이중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서점에 가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풍기는 아늑함과, 지식이 집약된 장소가 주는 풍성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 느낌이 좋다. 하지만 이미 사기로 결정한 책이 있는 경우엔, 단지 그 도서를 구입할 목적으로 서점에 가는 일은 없다. 온라인 서점에서 저자와 책 제목만 입력하여 클릭 몇 번으로 책을 구입해 배송 받는 게 무척 ..
어느덧, 요즘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을 주로 하는 직장인이 쓸만한 노트북은 어떤 게 있을까,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볼 시기가 되었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조차 업무를 흘리고 다니는, 칠칠치 못한 직장인(바로 내 얘기다.)이라면 적당히 큰 디스플레이에 가벼운 노트북이 쓰기에 알맞을 게다. 회사에서 게임을 즐길 일도 없으니 외장 그래픽 카드도 필요 없을 터이다. 다만 요즘 많이 쓰이는 SSD 정도는 장착되어 있어야 빠른 시일 내에 노트북을 교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요즘 2년여 사용한 소니 노트북이 많이 느려진 것을 HDD 탓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다. 노트북을 바꿀 핑계거리가 생겼다. 애플의 맥북에어 이후로 봇물 터지듯 출시되는 울트라북 노트북 모델들은 모두 가벼운 무게..
신발은 밤새 잘 말랐다. 동유럽의 겨울은 바깥이 충분히 추워서인지 어느 실내든 들어서면 따뜻한 기운이 충만했다. 밤새 뜨끈하게 틀어놓은 히터가 신발은 물론이고 옷가지에 스민 습기를 모두 먹어 치웠다. 둘째 날에도 비가 온다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질척해지는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걸어야 할 터였다. 일어나니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방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외쳤다. 잠들기 전 내일의 날씨가 맑기를 잠깐 기도했던 것도 같다. 낯선 곳에서 맞는 아침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처음 보는 창 밖의 풍경이 비현실적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바라보던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다. 부다페스트에서 맞는 둘째 날 아침의 창 밖 풍경은 빗방울이나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지 ..
2011년 말, 유럽에 가게 된 것은 장기출장 덕분이었다. 밤이 되면 세상이 사라지듯 컴컴해 지는 겨울의 동유럽에 머무는 동안, 긴 크리스마스 연휴엔 주변국 몇 도시를 돌아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어 그리 멀지 않고 큰 비용도 들지 않을 곳을 검색했다. 여행이란 세세한 목적도 거창한 목표도 없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적합한 곳이었으면 했다. 우선 부다페스트가 떠올랐다. 그리고 곧 이어 파리가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여행지는 절반은 즉흥적으로 정해졌다. 두 도시의 호텔을 검색하여 예약하고 기차표와 비행기표를 구입한다. 이 두 가지만 제대로 해 놓으면 별다른 걱정은 없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IOS와 앱스토어를 경험해보니 애플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대해 점점 호감이 생긴다. 이른바 '애플빠'의 탄생이다. 때때로 스티브 잡스의 예전 키노트 영상들을 찾아보거나 애플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애플의 새 제품이 발표되면 바로 구입하진 않아도 관련 자료들을 찾곤 한다. 뒤늦게 찾은 2008년 1월에 진행된 애플 키노트 영상을 가끔 본다. 잡스가 마치 가벼운 서류뭉치를 빼내듯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보내는 바로 그 순간이 담겨 있는 영상이다. 나는 그 영상에서 마치 오랫동안 아끼던 보물을 조심스레 꺼내듯, 자부심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신제품을 선보이는 잡스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은 사용자 접근성이 좋은 플랫폼을 선호하기..
내게 마이 앤트 메리(My Aunt Mary)의 음악은 항상 '청량감'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올려진다. '맑고 시원한' 그 느낌은 언뜻 세련된 팝 사운드와도 통하고 통쾌한 락의 질주감과도 연결되곤 했다. 더불어 그들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그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이었다.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정순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토마스 쿡(Thomas Cook)의 음악에서도 그 감수성은 어김없이 살아있다. 아니, 극대화되었다. Thomas Cook Journey (2011) 01. 솔직하게 02. 아무 것도 아닌 나 03. 집으로 오는 길 04. 노래할 때 05. 청춘 06. 불면 07. 폭풍 속으로 08. 꿈 토마스 쿡의 두 번째 앨범인 [Journey]는 한 곡도 버릴 게 없는 앨범이라는 수식어가..
내가 기대했던 아이패드2 의 활용방안을 잠시 정리해 보자. - 무선 키보드도 구입한 만큼 휴대성 높은 글쓰기 디바이스로 활용해 볼 수 있겠고, - Podcast와 각종 앱을 통해 외국어학습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 앱스토어를 통해 영어 원서와 오디오북을 구입해 아이패드2를 전자책리더로 쓸 수 있고, - Garageband, forScore 등의 앱으로 한동안 손 놨던 기타를 다시 가지고 놀 예정이며, - 또 하나, 간혹 서점이나 신문가판대에서 구입해 읽었던 씨네21을 아이패드2 내에서 직접 구입해 읽을 수 있겠다. 이 정도. 글쓰기 디바이스로서의 아이패드 블로그 뿐 아니라 잠깐의 생각을 남기는 일기 정도의 글쓰기도 염두에 두고 있다. 글쓰기용 도구로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아이패드와 무선..
애플 제품을 사용하다 보면 기기 외에도 엄청난 소비를 부추기는 애플리케이션 시장과 애플의 상술에 놀랄 때가 있다. 앱스토어에서 본인의 필요에 딱 부합하는 적절한 앱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구입 후 활용성이 떨어져 사용하지 않게 되는 앱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 역시 합리적 소비와는 동떨어져 애플의 계략(?)에 놀아나는구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블릿 아이패드2 구입을 부추기는 건 역시 앱스토어의 마력이다. 일단 방대한 앱스토어에 매료되었다면 iOS가 아닌 다른 운영체제의 태블릿에 눈길을 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앱스토어와 결합된 아이패드는 경쟁사 태블릿 제품들의 하드웨어를 수식하는 수치상의 이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물론 광활한 앱스토어를 항해하다 보면 그럴듯하게 치장은 했으나 써보면 쓸모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