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뜻하지 않은 아기의 모습과 아내의 위독함에 충격을 받은 벤자민의 아버지는 크기만은 아직 아기인 그를 어느 양로원 계단에 버려둔 채 발길을 돌린다. 그런 그를 양로원에서 일하는 퀴니(태라지 P. 헨슨)가 발견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이곳.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가까워 보인 벤자민에게 어쩐지 어울리는 장소 같다. 퀴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나이 들어 아이처럼 된 노인들의 관심 속에 벤자민은 거꾸로 성장한다. 성장과 함께 젊음의 꼭지점을 돌아 육체의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와 달리 그는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 날마다 생명의 샘을 마시는 벤자민은 아직 노인의 모습일 때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의 만남은 둘..
그 동안 잊고 있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픽사와의 돈독한 협력관계를 잊더라도 디즈니 스스로 훌륭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는 사실을. 픽사와 드림웍스를 필두로 3D 애니메이션 시장이 경쟁적으로 확장된 이후부터 디즈니의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는 매우 협소해졌다. 이미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한 관객들은 더 이상 입체감 없는 2D 애니메이션에 기꺼이 관람료를 지불하지 않게 되었다. 이 무관심이 비단 영화의 형식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나 , 또는 시리즈 같은 뛰어난 작품들에서 디즈니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 마치 거대한 애니메이션 왕국의 통치권을 여러 명과 나눠가진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어느 순간부터 디즈니-픽사라는 명칭에서 픽사라는 이름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각기 개성이 다른 선수들이 대회우승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인다. 혹독한 훈련과정, 선수들간의 감정대립, 시스템 안에서 드러나는 불합리, 이 모든 역경을 외치고 드디어 마지막 결전의 순간에 다다른 주인공들. 최종 경기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수많은 장애물들이 부상, 역전, 승리, 패배, 좌절, 환희 같은 감정과 단어들에 깃들어 이 마지막 경기를 수식한다. 마치 코 끝이 찡해오듯 강렬하게 농축된 이 인생의 축소판. 누군가가 승리하면 다른 누군가는 패배하는 결코 따뜻하지 않은 결과의 이분법.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실제 스포츠경기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스포츠영화는 매우 드물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긴장감과 한 순간의 차이로 결정되는 긴박한 승부를 완벽하게 짜인..
이 블로그의 ‘GUITAR’ 카테고리를 둘러본 방문객이라면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꽤 오래 전에 잠깐 기타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Richie Kotzen*을 굉장히 좋아했다. 화제가 나온 김에 나는 마침 예전에 사뒀던 Poison의 [Native Tongue] 얘기를 꺼냈다. 테잎으로 소유하고 있던 앨범이었다. 잠깐 이 테잎을 구입했던 기억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시에는 지금처럼 음반을 미리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에 CD와 테잎 구입도 완전히 랜덤 방식이었다. 특히 메탈리카나 본 조비 같은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검증된 초대형 밴드들의 음악이 아니라면, 구입한 음반을 계속 듣게 되느냐 마느냐를 순전히 순간의 선택에만 의존한 셈이었다. [Native Tongue]으로 말하자면..
전편들을 본 관객들이라면 아마도 헛된 기대를 가지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하 )은 1, 2편에 이어 여전히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엉성한 이야기를 그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1편부터 프랭크 마틴(제이슨 스테이덤)의 이 세 번째 미션까지 쭉 함께 해 온 이들이라면 그 따위 것은 아무래도 중요치 않다. 보고 싶은 것은 이야기가 아니다. 따로 있다. 의 여주인공 발렌티나(나탈리아 루다코바)는 극중 이런 대사를 날린다. 프랭크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게 느껴진다고. 스크린 바깥에서 시리즈를 보는 이들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그는 초인에 가까운 생존력과 지킬 것은 꼭 지키고 마는 완벽한 보호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일단 보는 이의 마음은 놓인다. 남은 것은 이 무적의 주인공이 그 놀라운 능력을 어떤 식으로 보여..
서로 다른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 영화나 같은 이런 테마소설집들의 장점은 각기 다른 개성들이 모여있는 만큼 그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작가들간을 비교하거나 그들에 대한 감상자로서의 호부를 피해갈 수 없기도 하다. 여러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좋고 나쁨의 차이. 어떤 것은 버려지고 어떤 것은 선택되는 취사선택의 유혹. 말하자면 이런 형식의 결과물들을 감상하는 것은 많은 창작자들 가운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둘 대상을 솎아내는 과정도 동반한다. 에는 모두 9명의 작가들이 써낸 짧은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나이를 가리키는 ‘서른’이라는 숫자를 소재로 탄생된 단편들이다. 각 소설들은 이 소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각기 달라서 어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