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이 지나면 그 흔적은 웬만큼 지울 수 있다 하더라도 이 비린 내음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안 나오는 피의 바다. 죽음에 가까이 온 살덩어리들이 손잡이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인간 정육점의 풍경.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 지옥의 풍경을 마치 사이보그처럼 유연성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마호가니(비니 존스)의 굳은 몸이 지키고 서 있다. 그리고 비밀리에 유지되고 있는 그들만의 세계에 사진작가 레온(브래들리 쿠퍼)이 끼어든다. 폭로되지 않은 진실에 대한 갈망 보다 더 큰 알 수 없는 유혹이 그를 이 지하철로 끌고 와 신경쇠약 직전으로 몰고 간다. 마치 자석처럼 이끌려 지하철 승강장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주인공. 마호가니의 무지막지한 갈고리와 망치질조차 그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 레온은 왜 점점 이곳..
핀란드의 작은 일본 음식점, 카모메 식당. 이곳에서 방금 새로 고안해 낸 오니기리를 세 사람이 맛보고 있다. 본래 이 일본식 주먹밥엔 넣지 않는 재료들인 순록고기와 청어, 가재 등을 넣어 만든 특이한 오니기리다. 가게 주인 사치에(코바야시 사토미)와 얼떨결에 식당 일을 돕게 된 미도리(가타기리 하이리), 그리고 이곳의 첫 손님이자 평생 무료 고객이 된 핀란드 소년 토미가 차례대로 새 주먹밥을 집어 든다. 그러나 결과는 영. 두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토미의 얼굴에도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표정은 들지 않는다. 어색한 재료들의 만남. 손님 없는 가게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던 미도리가 제안한 이 단출한 시식회는 별 성과 없이 끝이 난다. 그날 저녁, 사치에와 미도리는 함께 합기도 동작을 하다 문득 계피롤을 만들..
가슴이 먹먹하다. 벚꽃과 함께 날려버린 그녀의 마지막 흔적이 여린 심장에 파고들어 따끔거린다. 뭐야, 이거.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평범한 듯 쿨한 소년과 시한부 인생의 미소녀가 서로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시시한 이야기는 안 봐도 뻔하다고 그렇게 스스로 당부했건만. 그러나 우습게도 어느새 나는 일본의 어느 마을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낸 소설 속 소년이 되어있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장의 어디쯤에서부터 그런 생각이 시작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분명 이건 내가 상상했던 그 이야기가 맞는데. 안 봐도 독자의 손바닥 안일 것 같았던. 그렇다. 카타야마 쿄이치의 틴에이저 러브스토리, 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기억되는 그때의 소중한 순간을 가슴에 아로새기기 위해 여러 가지 관습적인 소재들을 끌어 모은다...
* 스포일러 포함 절친한 친구들과 계곡 리프팅을 즐기는 사라(쇼나 맥도날드). 이들은 여성임에도 웬만한 남자들도 하기 힘든 레저스포츠만 골라 하는 마니아들이다. 사라는 그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그것이 비극의 바로 전 장면이었음을 알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라는 그 상실감으로 인해 1년이 지나서야 예전 친구인 베스(알렉스 레이드), 주노(나탈리 잭슨 멘도자)와 재회한다. 사라의 삶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주노가 특별히 마련한 이번 모임의 목적은 미지의 동굴 탐험. 각종 안전도구를 갖춘 다음에야 맘 먹고 들어설 수 있는 비교적 고난도의 코스다. 세 친구를 비롯 도합 6명의 모험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그 암흑의 입구에 들어선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던 여정은..
내 눈을 의심했다. 와 의 감독이 영혼은 물론 육체마저 정확히 일치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기극이다. 적어도 동명이인일 가능성 정도는 남겨줬어야 한다. 어떻게 이 두 영화가 같은 사람의 손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IMF라는 세 자 알파벳으로 한국을 수식할 수 있었던 시절의, 부산의 마약시장을 둘러싼 생존게임 은 잔인하리만치 숨막히는 밀도의 영화다. 화면은 차갑고 인물은 뜨거우며 사건은 처절하다. 도무지 쉴 틈이 없었던 에 비하면 최호 감독의 그 전작인 에서는 열 숨 정도는 돌릴만한 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이야기와 우연히 만난 20대 청춘이 서로에게 끌리는 스토리가 어떤 유사한 부분을 가지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소재부터 확연히 다른 두 영화다. 다만..
는 에 이어 연인 베스퍼(에바 그린)를 잃은 본드의 복수의 여정을 다룬다. 내용상으로 시리즈 최초의 연작인 만큼 두 작품은 감독이 각기 달라도 닮은 부분이 많다. 액션장면을 다루는 방법이라든지 두 작품을 이어주는 본드의 성격 등,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므로 전작에 만족했던 관객들이라면 이 속편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액션장면의 경우 역시나 전작에 비해 연출의 강도가 세 보인다. 예고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본드는 과격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액션의 절정의 순간에 베스트 컷으로 불릴만한 멋진 포즈들을 다수 만들어낸다. 기존의 본드를 연기했던 선배들과 다르게 다니엘 크레이그의 몸은 왠지 이런 상황에 훨씬 익숙할 것 같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본드는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갑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