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의 스타벅스에 종종 가는 편이다. 조그만 매장이라 그런지 내가 가는 시간대엔 사람도 별로 없어, 커피나 차 한잔 사서 앉아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기에 참 좋다. 물론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프랜차이즈 카페를 집과는 또 다른 편안한 휴식공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과거의 커피숍처럼 굳이 누군가와 함께 와서 담소를 나눠야 어울릴만한 장소가 아니라, 혼자 오더라도 담배냄새 하나 배어있지 않은 깔끔한 좌석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곳이 지금의 스타벅스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일 것이다. 문제는 커피의 가격인데, 확실히 스타벅스의 커피값은 가볍지 않다. 이 책 의 표지에도 적혀있듯 그것을 ‘점심 값보다 비싼 커피 한 ..
이냐리투의 영화를 보는 것은 누군가의 황폐해진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런 경험이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지난 아픔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거나 혹은 영화에서 실시간으로 그런 역경과 마주치게 된다. 영화 에서 지구상의 다른 공간에서 동시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은 서로 희미한 끈으로 연결되어있다. 각기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현미경을 이용해야만 하는 의 에피소드들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출발점의 작은 행위가 거대한 폭풍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닮아있다. 모로코와 일본,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역이라는 영화 속 장소들은 각 공간간의 거리만큼이나 서로 단절되어 있지만, 인간사를 고난의 연속이라 부를만한 몇 가지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영화를 통해 하고 ..
영화산업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코믹스 속 슈퍼히어로들을 스크린위로 끌어내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까지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모든 만화적 연출들이 이제는 눈 앞에 생생하게 펼쳐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근래 들어 DC와 마블로 대표되는 미국 히어로들이 대거 은막을 찢고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매년 어떤 새로운 영웅이 영화로 재해석 되어 나타날지 기다리는 것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무척 설레는 일이다. 존 파브로의 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초능력이 아닌(비현실적이라는 면에서 사실상 초능력이라 봐도 무방하겠지만) 지능과 현실적 재력으로 승부하는 히어로가 하나 더 영화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여기에 더해, 마치 시절의 크리스찬 베일..
Cort G-290 이 녀석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벌써 지금으로부터 5년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니 말이 나온 김에 그 이전으로 더 가보자. 콜트 G-290을 만나기 이전에 접했던 기타들까지 말하기 위해서는 군대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가 비로소 기타를 연습해보고자 마음먹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기타는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의 삼익의 저가형 모델로 플로이드 로즈 브릿지가 장착되어있는 녀석이었다. 저가의 플로이드 로즈형 브릿지는 사실 튜닝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튜닝이 자주 틀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튜닝 자체도 정확하게 맞추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연습은 가능한 기타였으므로 초보자인 나에게 큰 문제는 없었다. 정작 문제는 처음 기타를 살 때 종종 그렇듯이 헤비메틀..
방 안엔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여자와 먼저 일어나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온 아빠는 두 딸과 귀여운 실랑이를 벌인다. 한 여자가 상처를 치유하는 어느 모임에서 딸의 출생과 남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십자가가 걸린 교회에서 한 사나이가 세상에 불만 가득한 얼굴의 다른 젊은이를 교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남자가 옆 침대에서 죽어가고 있는 환자들을 쳐다본다. 그는 죽음을 상상한다. 낙태를 경험한 듯한 여인이 남편의 아이를 가지기 위해 의사와 상담 중이다. 서로 무슨 관계에 놓여있는지 알 수 없는 이 등장인물들은 영화 안에서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에 흩어져있다. 은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이 영화는 시간의 순서를 따라 사건을 배열..
죽음과 탄생은 하나의 이어진 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나 탄생만을 생각하곤 한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또 삶을 즐기게 되면서부터 죽음은 항상 멀리할 그 무엇, 또는 결코 다가오지 않을 미래의 일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어떤 일을 애써 떠올리는 것과 같다. 물론 죽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경험해 볼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의 소원성취 모험기 가 다소 피상적으로 와 닿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만약 내가 짧게는 몇 일, 길게는 고작 몇 달이라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다면, 나로서는 이들처럼 여유롭게 마지막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새파랗게 젊은 나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