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수많은 은행강도 이야기 중에서 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이유는 없다. 소재가 실화로부터 나왔다는 것 외에는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일 독특한 요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은 군말 없이 잘 짜인 장면간의 이음새와 다소 냉혹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들로 인해 분명 호감을 가지게 되는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T-Rex의 흥겨운 노래 “Get It On”이 극중 분위기를 미리 점지 하듯 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영화다. 주인공 테리(제이슨 스테이덤)로 이야기하자면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하면서 비록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곤란한 처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고민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말하자면 그를 비롯한 영화의 대다수 등장인물들은 낙천적인 영화의 분위기 안에서 성..
겨울이면 30일 동안 암흑의 세계가 펼쳐지는 알래스카 배로우. 영화는 태양이 이 마을을 비추는 마지막 날, 즉 어둠의 긴 터널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로부터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거나 남아 이 긴 암흑의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한편 마을의 보안관 에반(조쉬 하트넷)은 동료와 함께 마을 외곽에서 무더기로 불타버린 전화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행위의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에반의 아내 스텔라(멜리사 조지)는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마지막 일을 끝마치고 마을을 떠날 계획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비행기 시간에 늦어지고 만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마을 안에선 개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로 돌아온 에반은 바에서 소동을 피우려는 마을의 낯선 방..
어느 고등학교의 첫 수학시간. 루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수학선생이 왜 자신이 이 수학기호로 불리게 되었는지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이야기는 가정부로 일하며 홀로 자신을 길렀던 어머니로부터 시작된다. 교코는 사고로 기억을 잃은 어느 수학박사의 집안일을 맡게 된다. 그녀는 박사를 돌보는 그의 형수로부터 몇 가지 규칙과 간략한 집안사정을 전해 듣는다. 박사는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력 장애를 얻었다. 그의 기억은 80분간 유지될 뿐으로 그 이후엔 이전의 일을 모두 잊고 만다. 이 때문에 교코가 오기 전의 가정부들은 모두 오래 일을 하지 못하고 그만둔 것이다. 교코와의 첫 만남에서 박사는 뜬금없이 그녀의 신발사이즈를 묻는다. 24라 대답하는 교코와 그것은 4의 계승이라 설명하는 박사. 현관 앞에서의 첫만남은 전화번호..
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미국 경제가 몰락한 2012년, 실업률은 최고치에 이르고 범죄율은 증가한다. 교도소는 모두 민영화되어 이익을 좇기 바쁘다. 그 중 한 교도소는 죄수들간의 죽음의 격투를 생중계하여 돈을 번다. 그러나 자극에 만성이 된 시청자들은 곧 싫증을 느끼고, 교도소들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죄수들을 활용하여 더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찾아낸다. 그것은 파괴와 스피드, 그리고 죽음을 소재로 한 ‘죽음의 경주’. 죽을 때까지 서로를 공격하여 최종적으로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여기에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여성 네비게이터(역시 여성죄수들)를 포함하면 그야말로 자극적인 소재의 완벽한 집대성. ‘죽음의 경주’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을 활성화시키는 최고의 프로그..
* 스포일러 포함 때때로 영화 전체가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호감을 갖게 되는 영화가 있다. 이를테면 스토리는 별로였는데 뇌리에서 잘 잊혀지지 않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을 가진 영화라든지, 흐지부지한 결말까지 다 봤지만 인상적인 오프닝 덕에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 또는 제작비에 허덕인 흔적이 역력한 화면 속에서도 가슴을 강하게 울리는 진심이 느껴지는 영화들 역시 이런 사례가 되겠다. 하긴 따지고 보면 거의 모든 영화들이 실망스런 부분과 만족스런 일부가 공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영화에서든지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중 어느 쪽의 비율이 더 큰지, 더 강한지에 따라 전체적인 감상의 갈래가 정해지는 것뿐이다. 영화 는 과연 어떤 감상을 낳게 될..
루이 레테리에의 는 어찌 보면 일종의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 주자와 같다. 이 영화가 이안의 의 속편이 아니라고 아무리 몸서리치며 항변해봤자 이미 우리는 이 녹색괴물이 지금의 테크놀로지와 결합되면 어떤 비주얼을 보여줄지 웬만큼 예상이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관객이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굳이 설명해 보자면, 는 전범으로 남아있는 TV 시리즈로부터 바로 건너뛰는 작품이 아니라, 중간에 불과 5년의 시간차를 가진 이안의 를 쌍둥이 형제로 둔, 그래서 그와의 비교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동시대의 결과물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믹스에서 탄생해 TV를 거쳐 마침내 스크린에서 한층 진화된 놀라운 화면을 보게 되리라는 관객의 바람은 한풀 꺾인 것이 되고 만다. 이를테면 영화 기술의 발전을 과시하며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