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한껏 들떠있다. 도시의 전광판이 거미복장의 영웅으로 도배되고 시민들은 그의 등장에 환호한다. 이미 도시의 치안에 큰 도움을 주는 스파이더맨으로서는 곳곳에 처 놓은 거미줄을 제거할 방법을 두고 시 당국이나 건물주들과 논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손발의 갈퀴로 유리벽을 타느라 생긴 스크래치 같은 것에 누가 신경이나 쓸까. 코스튬을 벗으면 또 어떤가. 경제적 상황이 그리 좋진 않지만 자작사진을 구입해주는 데일리 뷰글이 있고 본업인 학업도 순조롭다. 닥터 옥토퍼스와의 힘든 대결과 병행해 메리 제인(커스틴 던스트)의 사랑도 얻었다. 스파이더맨이 아닌 피터 파커로서 말이다.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이 영웅의 앞날엔 당분간 장애물이 없을 듯 하다. 이 거미청년의 이야기는 시..
* 스포일러 포함 이 카톨릭 학교의 플린 신부(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는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종교가 중세시대처럼 공포와 단절의 공간이 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을 지역사회와 함께 가져가길 원한다.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는 동료신부들, 학생들과 농담을 즐기는 이 신부와 정반대의 인물이다. 그녀는 학생들을 향해 절대 미소 짓지 않는다. 아이들은 철저히 훈육의 대상이며 목적에 우선되는 규율의 적용대상자들이다. 학교의 젊은 수녀이자 역사교사인 제임스(에이미 아담스)는 어느 날 수업 중 플린 신부와 만나고 온 한 흑인학생의 이상한 행동을 목격한다. 아직 인종차별이 심각했던 시대에 학교의 열린 방침을 보여주듯 받아들인 그 학생의 이름은 도널드(조셉 포스터). 플린 신부를 존경하며 신부의 꿈을..
전화국에 근무하는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는 아들과의 영화약속을 뒤로 하고 직장동료의 부탁으로 출근한다. 빗나간 일정만큼이나 불안한 하루가 지나간다.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사라졌다. 이웃을 수소문해보고 경찰에도 연락해보지만 아홉 살 난 아들 월터는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의 초조한 심정엔 아랑곳 없이 경찰의 대응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 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실종신고를 접수 받는다. 긴 나날들이 지나가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월터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크리스틴을 기다리는 건 생명부지의 어린아이. 얼굴이 다름은 물론 키도 자신의 아들보다 작고 어디서 포경수술까지 해온 이 의문의 아이를 경찰은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와 동일인이라 우긴다. 여..
영화의 제목이자 와이오밍 주의 산 이름인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중 처음 3분의 1은 산이 스스로를 주인공들의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데 소요된다. 푸르디 푸른 하늘, 흐르는 계곡물, 포근한 양떼, 두드러진 녹색의 산림 등, 잭(제이크 질렌홀)과 에니스(히스 레저)의 뒤쪽으로 산의 풍경이 하나씩 펼쳐진다. 그 모습은 마치 관객의 기억 속에 이 장소가 아련하게 각인되길 바라는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진다. 카메라가 주인공들과 산에 드리운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이 양떼를 지키는 일로 고용된 일개 노동자가 아닌 것 같은 착각마저도 들 정도다. 꼭 그 어떤 고민 없이 찾아온 듯한 이 공간. 오로지 자연과 마주하기 위해서, 혹은 두 사람..
우주만큼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적당한 공간은 없다. 그곳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앞으로도 결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공간이다. 사람들은 낯선 것으로부터 불안을 느낀다. 또 아직 알지 못하는 대상으로부터 두근거리는 흥분을 얻기도 한다. 우주는 바로 그런 대상이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그런 공간. 그것은 긴장을 유발하고 보는 이를 집중하게 한다. 은 이 특정 공간이 불러 일으키는 공포를 다룬다. 우주 저 너머에 지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또 그 지옥을 경험한 우주선이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는 설정이 의 시작이다. 은 과 , 과 등의 영화를 통해 게임과 영화의 경계선을 지우는데 몰두해 온 감독, 폴 W.S. 앤더슨의 1997년 작품이다. 그의 필모..
영화를 보고 있자니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는 마이클 크라이튼이 1976년에 쓴 소설 을 원작으로 삼고 있는 작품. 내가 영화에서 느꼈던 기시감은 알고보니 그 소설이 원인이었다. 은 다름아닌 고대서사시 ‘베오울프(Beowulf)’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작품이고, 내가 최근(?)에 봤던 로버트 저메키스의 또한 이 이야기를 토대로 완성된 영화다. 작자미상의 이 영웅 이야기를 각색한(의 경우 몇 가지 설정을 빌려온>) 와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일단 이야기의 모티브가 매우 닮아있다. 에서 아메드(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만나는 바이킹 전사들은 어느 날 찾아온 소년 전령에 의해 로쓰가르 왕이 통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