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포함 이과를 선택하지 않은 건 인생 최대의 실수다. 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숫자에 능한 이들이 살면서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경제활동의 기초는 수학, 어떤 행동이 가져다 줄 이익의 경중을 따질 때에도 계산이 필요하고, 마트에서 일주일 치 장을 볼 때에도 손해보지 않으려면 물건값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매트릭스 안에서 네오는 해커, 현실에서는 모든 사물을 0과 1로 치환하여 볼 수 있는 초인이 되었다. 당연히 모두 숫자가 개입된 일이다. 의 벤(짐 스터져스)은 숫자를 주무르는 것은 물론 기억력까지 좋았다. 그래서 기회가 되었을 때 일확천금을 딸 수 있었다. 그래 맞아, 문제는 이과였어. 물론 농담이다.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만큼 머리가 좋지도 수학성적이..
원래 원작을 뛰어넘는 재창조물이란 보기 드문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각색된 결과물들은 대개 원작에 매료된 팬들로부터 원래 작품이 가진 매력의 일부분만을 취하거나 혹은 그 핵심을 잘못 이해했다는 이유로 불평을 듣기 일쑤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가 영화로 재탄생 될 때보다 텍스트가 영상으로 변환될 때 더 정확하게 적용된다. 아마도 소설에 대해 열린 상상력을 가질 수 있는 독자와 주어진 영상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영화관객의 위치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리라. 카타야마 교이치의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는 각색이 원전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통념을 재확인시킨다. 원작 자체가 일찌감치 틴에이저 신파임을 감안할 때 그 정서를 훼손하지 않고 스크린 속에 어떻게 구현해내느냐는 고민이 영화에 묻어나긴 한다. ..
* 스포일러 포함 이런 말을 계속 해서 안타깝긴 한데 어쩌랴, 각색된 영화의 모든 원작을 일일이 찾아볼 수는 없잖은가. 이럴 때 터무니없이 부족한 독서량을 탓해봤자 소용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래야만 마음이 좀 놓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 를 봤고, 그래서 원작소설이 이 영화에 가지는 비교우위(당연히)를 측정할 입장이 못 된다는 말이다. 영화를 원작과 분리한 채 영화 자체만으로 보겠다는 구차한 변명. 어느 날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이 멀어간다. 처음 이 증상을 가진 일본인 환자를 진찰했던 안과의사(마크 러팔로)도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알 수 없는 증세가 옮겨갈 것이 걱정되어 아내(줄리안 무어)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하지만 그녀의 눈은 멀..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뜻하지 않은 아기의 모습과 아내의 위독함에 충격을 받은 벤자민의 아버지는 크기만은 아직 아기인 그를 어느 양로원 계단에 버려둔 채 발길을 돌린다. 그런 그를 양로원에서 일하는 퀴니(태라지 P. 헨슨)가 발견한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이곳.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가까워 보인 벤자민에게 어쩐지 어울리는 장소 같다. 퀴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나이 들어 아이처럼 된 노인들의 관심 속에 벤자민은 거꾸로 성장한다. 성장과 함께 젊음의 꼭지점을 돌아 육체의 내리막길을 걷는 우리와 달리 그는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것. 날마다 생명의 샘을 마시는 벤자민은 아직 노인의 모습일 때 한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와의 만남은 둘..
그 동안 잊고 있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픽사와의 돈독한 협력관계를 잊더라도 디즈니 스스로 훌륭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라는 사실을. 픽사와 드림웍스를 필두로 3D 애니메이션 시장이 경쟁적으로 확장된 이후부터 디즈니의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는 매우 협소해졌다. 이미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한 관객들은 더 이상 입체감 없는 2D 애니메이션에 기꺼이 관람료를 지불하지 않게 되었다. 이 무관심이 비단 영화의 형식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나 , 또는 시리즈 같은 뛰어난 작품들에서 디즈니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게 사실. 마치 거대한 애니메이션 왕국의 통치권을 여러 명과 나눠가진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어느 순간부터 디즈니-픽사라는 명칭에서 픽사라는 이름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각기 개성이 다른 선수들이 대회우승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한자리에 모인다. 혹독한 훈련과정, 선수들간의 감정대립, 시스템 안에서 드러나는 불합리, 이 모든 역경을 외치고 드디어 마지막 결전의 순간에 다다른 주인공들. 최종 경기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지금까지 거쳐왔던 수많은 장애물들이 부상, 역전, 승리, 패배, 좌절, 환희 같은 감정과 단어들에 깃들어 이 마지막 경기를 수식한다. 마치 코 끝이 찡해오듯 강렬하게 농축된 이 인생의 축소판. 누군가가 승리하면 다른 누군가는 패배하는 결코 따뜻하지 않은 결과의 이분법.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 불리는 실제 스포츠경기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스포츠영화는 매우 드물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긴장감과 한 순간의 차이로 결정되는 긴박한 승부를 완벽하게 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