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을 의심했다. 와 의 감독이 영혼은 물론 육체마저 정확히 일치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기극이다. 적어도 동명이인일 가능성 정도는 남겨줬어야 한다. 어떻게 이 두 영화가 같은 사람의 손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IMF라는 세 자 알파벳으로 한국을 수식할 수 있었던 시절의, 부산의 마약시장을 둘러싼 생존게임 은 잔인하리만치 숨막히는 밀도의 영화다. 화면은 차갑고 인물은 뜨거우며 사건은 처절하다. 도무지 쉴 틈이 없었던 에 비하면 최호 감독의 그 전작인 에서는 열 숨 정도는 돌릴만한 여유를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이야기와 우연히 만난 20대 청춘이 서로에게 끌리는 스토리가 어떤 유사한 부분을 가지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소재부터 확연히 다른 두 영화다. 다만..
는 에 이어 연인 베스퍼(에바 그린)를 잃은 본드의 복수의 여정을 다룬다. 내용상으로 시리즈 최초의 연작인 만큼 두 작품은 감독이 각기 달라도 닮은 부분이 많다. 액션장면을 다루는 방법이라든지 두 작품을 이어주는 본드의 성격 등,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므로 전작에 만족했던 관객들이라면 이 속편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액션장면의 경우 역시나 전작에 비해 연출의 강도가 세 보인다. 예고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본드는 과격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으며, 액션의 절정의 순간에 베스트 컷으로 불릴만한 멋진 포즈들을 다수 만들어낸다. 기존의 본드를 연기했던 선배들과 다르게 다니엘 크레이그의 몸은 왠지 이런 상황에 훨씬 익숙할 것 같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본드는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보호할 갑옷..
마크 월버그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은 확실히 남자가 봐도 멋지다. 개성 있는 얼굴과 독특한 캐릭터를 자양분 삼아 그는 이미 견고한 필모그래피의 탑을 쌓아 올린 베테랑 배우가 되었다. 이 배우는 언뜻 보기에 작은 체구에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에 어린 시절 골목대장 정도는 쉽게 따냈을 것 같은 인상이지만, 때로는 어린 아이같이 너무도 순진한 표정을 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매력의 그가 만약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 아쉬웠을 것이다. 게임원작을 두고 있는데다가 형사이면서도 법 밖에 서있는 마초 캐릭터를 내세운 은 말 그대로 마크 월버그를 위한 영화다. 검은 가죽 재킷을 걸치고 예의 그 멋들어진 양미간의 주름을 진하게 지어주면서 양 손의 매그넘을 펼치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하긴 새삼스레 (이하 )의 매력 없는 스토리를 부여잡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조금 생뚱맞은 일이 될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김지운의 전작들이 엄청난 흡인력을 가진 줄거리를 보여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국적에 가까운 영화 속 분위기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니다. 웃음 속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의 산장, 현실과 격리된 듯 환상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의 별장, 의 차갑고 세련된 도시의 밤거리. 김지운 영화의 세계는 이들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으로만 본다면 꼭 판타지를 그리지 않더라도 영화가 굳이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 될 필요는 없음을 증명한다.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어느 곳, 어느 지점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
사실 수많은 은행강도 이야기 중에서 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이유는 없다. 소재가 실화로부터 나왔다는 것 외에는 관객을 영화로 끌어들일 독특한 요소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은 군말 없이 잘 짜인 장면간의 이음새와 다소 냉혹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들로 인해 분명 호감을 가지게 되는 영화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T-Rex의 흥겨운 노래 “Get It On”이 극중 분위기를 미리 점지 하듯 은 기본적으로 유쾌한 영화다. 주인공 테리(제이슨 스테이덤)로 이야기하자면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하면서 비록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곤란한 처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고민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말하자면 그를 비롯한 영화의 대다수 등장인물들은 낙천적인 영화의 분위기 안에서 성..
겨울이면 30일 동안 암흑의 세계가 펼쳐지는 알래스카 배로우. 영화는 태양이 이 마을을 비추는 마지막 날, 즉 어둠의 긴 터널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로부터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거나 남아 이 긴 암흑의 시간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한편 마을의 보안관 에반(조쉬 하트넷)은 동료와 함께 마을 외곽에서 무더기로 불타버린 전화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행위의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에반의 아내 스텔라(멜리사 조지)는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마지막 일을 끝마치고 마을을 떠날 계획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고로 비행기 시간에 늦어지고 만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가운데 마을 안에선 개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로 돌아온 에반은 바에서 소동을 피우려는 마을의 낯선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