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엑스박스, PSP, 휴대폰, 아이팟과 아이튠즈, 유튜브 등 지금 십대의 문화적 기호들이 총출동하는 『디스터비아』는 젠체하지 않는 담백한 스릴러다. 아니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어둡고 음침한 느낌의 장르명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재미있다. 『디스터비아』는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기억나지 않아도 좋을 가벼운 영화지만, 관객의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상해줄 만큼의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다. 이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그것의 치밀한 이야기구성에 있지 않다. 『디스터비아』는 일부 영화팬들이 목매는 휘황찬란한 CG를 보여주지도 않고 탄탄하다고 부를만한 플롯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관객이 범인이 누구인지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는 이 영화의 재미는 오히려 소소한 반전..
안톤 후쿠아의 작품들은 액션영화의 마초중심적인 외피 속에 풍부한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스타일에 집착한 시각적 이미지로 승부하는 영화들이다. 아마도 지금 대부분의 액션영화들이 궁리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현란하고 더 강렬한 이미지들을 더 많이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물음일 텐데, 안톤 후쿠아도 홍콩 느와르의 형식을 헐리우드 속에 녹여내려 했던 데뷔작 『리플레이스먼트 킬러』(1998)에서부터 줄곧 스타일리쉬한 액션씬을 짜내는데 골몰한 흔적이 보이는 감독이다. 뮤직비디오 출신의 감독들이 대개는 그렇듯 그도 영화의 이미지에 집착한다. 안톤 후쿠아의 최고작 『트레이닝 데이』(2001)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영화였다. 이 영화는 액션장면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않고 두 인물(덴젤 워싱..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해 존 쿠잭 주연의 영화 『1408』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작년에 본 영화『사일런트 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별도의 원작(각각 스티븐 킹의 소설, 일본 코나미사의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은데, 그나마 공포의 소재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환상을 다뤘다는 점이 비슷했고, 아마도 두 영화의 결말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매듭짓는 방식이 서로 달랐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1408』은 주인공 엔슬린이 겪은 환상이 결국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면서 관객의 공포를 이끌어내려 했지만, 『사일런트 힐』은 마지막까지 현실과 환상이 서로 절대 만나지 않는 평행선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한다. 『사일런트 힐』..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케빈 코스트너는 표정이 많지 않은 배우다. 격한 감성을 표출하는 캐릭터, 또는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산하는 역할은 왠지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심지어 고뇌에 휩싸여있을 때도 그의 얼굴은 오히려 무표정하다. 그는 분명 평소에 온화한 얼굴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는 차라리 냉소(冷笑)에 가깝다. 그 인상과 특유의 미소 또한 매력적인 것임은 분명하나, 이것이 동시에 그를 ‘차가운 신사’ 이상의 이미지로 포장해내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얘기해 이미 영광의 시절이 지나버린, 중년의 이 배우는 『미스터 브룩스』에서 그 자신의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살인행위에 중독된 자신을 타일러보지만, 그게 제..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녁반찬을 걱정하던 엄마는 마침내 굳은 결심을 한 듯 팔을 걷어붙인다. 지난주와 그저께 모두 카레를 먹었는데, 오늘은 무얼 만드실까? “오늘이야말로... 카레로 한다!!” 입맛까지 다시면서 색다른 메뉴를 기다린 딸 노노코의 기대는 여지없이 사라진다. 아들 노보루에게 공부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모처럼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고 싶었던 아빠는,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금세 긴장하여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내고 만다. 온가족이 함께 간 쇼핑몰에 노노코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모두들 걱정하고 있을 때, 노노코는 정작 자신이 아닌 가족들이 미아가 되었다면서 태연자약하다. 음, 뭔가 느낌이 오질 않는다고? 그건 아마 나의 표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게다. 아니..
전편인 『판타스틱 4』(2005)의 전 세계적인 성공은, 이제 잘 만든 특수효과 하나로도 영화 제작자들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적어도 거대한 제작비를 들인 영화들에 한해서,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나 촘촘히 짜인 플롯의 흡입력 같은 전통적인 영화의 매력들은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타스틱 4』의 미국 내에서의 성공은 아마도 원작의 힘이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추리해 낼 수 있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높은 흥행성적은 원작만화의 매력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헐리웃의 자랑인 특수효과와 세계적인 미녀 아이콘 제시카 알바가 유일한 장점이었음에도 『판타스틱 4』는 일정이상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전작의 성공을 발판으로 네 명의 ‘판타스틱’한 영웅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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