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가면 과식의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편이다. 함께 식사를 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종종 나에게 핀잔을 준다. 그 핀잔의 내용은 음식을 조금 남기는 편이 먹을 것에 대한 초연한 태도를 드러내 먹는 이의 사회적 지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농담 섞인 것에서부터 이런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 습관이 될 경우 맞을 수 있는 내 건강상의 문제에 대한 걱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항상 음식을 다 먹으려 하지 말고 적당히 조절하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게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먹을 것에 대한 집착과 남겨진 음식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작된 이 행위가 우려했던 대로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나의 이런 행동이 저 멀리 아프리카 남부 어느 스러..
책을 다 읽고 역자후기를 본다. 유독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긴다고 한다. 이 문장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유는 명백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은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진 나 같은 독자에게 결코 친절한 저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만큼 글마다의 편차는 있지만 몇몇 글은 신학과 철학과 문학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그 모든 지적 축적물의 얼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책의 제1부에 해당하는 부분은 작가의 일상과 다양한 경험을 유머와 풍자와 패러디로 포장해 읽기 쉽게 진행된다. 물론 이 안에도 작가 특유의 수많은 ..
그렇지 않았던 소년은 드물겠으나 만화는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다. 지금은 잘 읽지 않지만 나이가 먹어서 때문은 아니고 뭐든지 결말이 나지 않으면 읽기 꺼려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TV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다음 회, 다음 권을 기다리기는 너무 애가 타니까. 요즘엔 종결된 만화는 또 너무 길어서 읽을 엄두를 못 낸다. 아무튼 이렇게 점점 멀어지나 보다. 는 실은 와 함께 구입한 책이다. 본래 서평에 관한 책을 찾고 있었는데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세상 모든 글쓰기’ 시리즈에는 그런 책이 없었다. 대신에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의 이름이 낯이 익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읽은 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의 주인이다. 예전에 읽었던 저자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듯 이 책..
예전에 블로그 카테고리 제목으로 ‘영화리뷰’, ‘책리뷰’ 등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해두고 다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카테고리 제목을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등으로 바꾼 것이다. 그건 ‘리뷰’라는 단어가 주는 다소 딱딱한 느낌 때문이었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잡담’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자유로워 보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는 곧 블로그를 부담 없이 운영하겠다는 의미다. 이 행위가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직업이 아닐 바에야 부담은 곧 흥미의 반감을 가져올 테고 블로그의 지속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쓰는 글이 좋을 리 없고 또 솔직할 리 없다. 카테고리 명칭의 변경은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의 첫 단계였다. 그것이 바뀐다고 그 내용 자체가 변할 리..
우리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자연의 부산물들을 섭취한다. 잘 재배한 곡식, 과일은 물론, 죽인 후 익힌 동물의 육체에서부터 아직 숨이 붙어 팔딱거리는 물고기까지,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음식’의 종류는 세계 각지의 기후와 풍습에 따라 천차만별, 수만 가지다. 재미있는 점은 오로지 본능에 지배당하는 동물과 달리 뇌를 다른 방면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인류가 음식에 맛이나 생존의 목적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음식과 그것을 이루는 재료의 또 다른 역사가 만들어진다. 스튜어트 리 앨런의 는 그것을 다룬다.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가 알려주듯, 저자는 인간들이 어떤 이유에서건 금기시해온 음식들의 사례를..
제목만 보고는 사진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설령 글이 있더라도 페이지 안에서 사진의 비율이 훨씬 높은. 생각보다 사진이 그다지 많이 수록되진 않은 ()는 수필집이다. 이 책의 제목은 소설가인 저자가 일상의 한 부분을 글로 포착하는 행위를 카메라가 대상을 담아내는 것에 빗댄 것이다. 물론 지은이가 직접 찍은 것, 혹은 그렇지 않은 이미지 등, 사진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 ‘농담하는 카메라’란 진짜 농담을 하는 어떤 놀라운 기계가 아니라 저자 자신을 가리킨다. 잠시 다른 얘기지만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뭔가 선수를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블로그를 몇 달간 방치해두었다가 다시 끼적대기 시작할 때쯤 내 머리를 스친 것이 바로 블로깅이 사진 찍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