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일반적으로 섹스에 소요되는 시간을 11분으로 상징화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데 어느 정도 영감을 받았던 어빙 월리스의 이라는 작품에서 그 기준점을 가져왔다고 한다. 다만 7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인색’해 보여 자신은 4분을 더 추가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둘 다 다소 박해 보이는 숫자이긴 매한가지나, 이 소중한 순간들이 대개 5분여에 그치고 마는 사례들도 허다하니 파울로 코엘료의 기준, 더 나아가 어빙 월리스의 7분조차 너그러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은 그렇다, 섹스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브라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소녀, 마리아는 누구나 그렇듯 성(性)에 관해 혼란스러운 10대를 거친다. 욕망과 사랑, 그리고 첫..
좁아터진 아파트 속 다섯 젊은이. 스물 한 살의 대학생 스기모토 요스케는 선배의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23세의 청춘, 오코우치 고토미는 어느새 TV속 스타가 되어버린 남자친구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것이 일과다. 그보다 한 살 많은 소우마 미라이는 청춘의 비밀을 술잔 속에서 발견하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을 집안에 끌어들인다. 그 미지의 소년은 알고 보니 밤마다 몸을 파는 나름 장사꾼. 영화사에 근무하는 스물 여덟의 남자 이하라 나오키는 애초에 애인과 시작한 이 동거생활이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청춘이란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믿고 싶을 때마다 결국 제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아닐까. 나중에야 그때를 추억하면서 얼마간의 골치 아픈 순간들을 ..
톨스토이가 민간설화, 종교전설, 구전된 이야기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든 도덕적, 종교적인 우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이 책 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톨스토이의 짧은 작품들은 모두 교훈을 전달하려는 목적이 뚜렷하고, 그 교훈 또한 매우 종교적이며 비세속적인 경우가 많다. 이라는 작품엔 거의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바보 이반의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곳은 군대를 이용한 전쟁도 일어날 수가 없고 상인들이 자본을 무기로 백성을 착취할 수도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곳이다. 이 국가에서 유일하게 칭송되는 것은 노동으로, 왕인 이반조차 정치는 뒷전이고 땅을 일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손에 흙이 묻지 않는 것은 진정한 노동이 아니며, 머리로 세상을 좌지우지하려는 사람들은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반의 나라의 중요한..
를 본 것은 고등학생이 다 돼서였다. 어린 시절이라고 하기엔 머리가 너무 컸던 그때에도 사쯔키와 메이, 그리고 세 마리의 토토로가 벌이는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에 넋을 놓았다. 지금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사실 그 이전에도 을 꼬박꼬박 챙겨보던 내 모습만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 그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내 또래 세대들은 그의 이름이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현재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가장 유력한 애니메이션 작가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꼽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그의 작품세계에 동화되지 못한 이들이라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미야자키 하야오, 혹은 지브리의 신작들을 여전히 고대하고 있다. 키리도시 리사쿠의 은 이 애..
의 앞부분에는 ‘허영만 만화창작 30주년 기념 헌정 평론집’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스스로가 밝힌 ‘평론집’에 가깝다기 보다는 만화작가 허영만과 그의 작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풀어내는 쪽에 가깝다. 위의 문구 바로 밑에는 “이 책을 만화가 허영만과 그의 만화에 바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허영만을 만화사적이나 작품의 사회맥락의 관점에서 파헤치는 시각은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애초에 ‘헌정’이라는 단어로 수식된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가급적 객관적 시각으로 표현되길 원하는(비록 그것이 읽는 이의 헛된 바람일지라도) ‘평론’이라는 단어로는 이 책을 설명하기 힘들다. 예컨대 ‘작가론’이라 분류되어 있는 첫 번째 챕터에서 허영만의 작품 세계를 좀 더 ..
내게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는 아직까지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문학의 중요한 지점들은 온통 백인 중심의 영미, 유럽계 작가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독서량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남미의 작가들까지 챙겨본다는 것이 그리 수월친 않다. 지금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미국, 유럽중심의 철학과 생활패턴임을 상기해볼 때 그 사실은 더욱 그렇다. 몇몇 유명한 작가들을 제외한다면 에콰도르나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작가들을 언제 찾아보고 떠올려 보겠는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은 이렇게 문학적인 미지의 세계(철저히 개인의 부족한 경험에 의한 판단이지만)였던 라틴 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칠레 출신의 루이스 세풀베다라는 작가를 나에게 알려준 소설이다. 농부 출신으로 아마존의 수아르 족의 생활터전으로 이민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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