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언어라는 강력한 도구로 재건축한 중세의 모습은 현재와 다른 패러다임 속을 걷는 미지의 세계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 시기의 철학, 신학적 쟁점들을 에 쏟아 놓았다. 그것도 미스터리라는 가장 강력한 매혹의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작가의 상상력이 고스란히 독자의 뇌리에 남을 수 있는 효능을 발휘하도록 말이다. 멜크의 아드소와 그의 스승인 배스커빌의 윌리엄은 14세기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통해, 이렇게 중세의 이야기 한 조각을 우리에게 전한다. 철학이 신학에 종속되어 인간의 이성을 새장에 가둬두었던 속 중세는, 불변의 진리가 인간의 손에 의해 확정된 시대였다. 성서의 해석을 두고 논쟁과 반목을 일삼던 세력들이, 실은 세속의 권력을 신의 ..
은 저자(著者)를 떠난 책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생에 관여하는 지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책 속 ‘나’의 동료인 블루마 레논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막 사서 읽다가 차에 치였고, 주인공의 친구를 비롯한 몇몇 주변인들도 떨어진 백과사전에 머리를 맞아 반신불수가 되거나 구석의 책을 꺼내려다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슬프면서도 상상이라 생각하면 왠지 우스운 이 일화들을 보여주는 것보다, 책의 ‘무서움’, 그러니까 그것들이 인간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오는 일종의 ‘두려움’을 설명하기란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이다. 책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운명이 좌우된 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책의 우산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은 왠지 낯설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신념..
문학 그 자체가 아니라 문학작품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언뜻 유쾌하지 않은 일 같기도 하다. 그것은 그 대상으로부터 독자가 받을 수많은 감상 중 몇 가지를 미리 정해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한 감상은 온전히 수용하는 자의 몫이 된다. 문학작품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감상의 수, 즉 그 ‘경우의 수’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 만큼이다. 우리 개개인은 얼마나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가. 작품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결국 개개인의 고유한 감정과 경험에 바탕을 둔다. 고로 작품의 해설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수많은 가능성을 미리 가지치기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떨지. 앞의 문제가 결국 ‘미리 말해진 것의 권위’를 앞서 인정하기에 발생하는 것이라..
설득의 논리학 - 김용규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논리적인 글에 굉장히 약하다. 이건 두 가지를 의미하는데, 하나는 내가 논리적인 글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의미에서 ‘약함’이고,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 논리적인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뜻에서의 ‘약함’이다. 논리적인 글과 말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왜냐하면 그런 글일수록 반박할 틈을 찾기 힘들며, 따라서 거기에 대해 내가 무언가를 덧붙일 때마다 내 논리적 체계의 바닥과 마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약간은 매저키스트같은 이 성향은 불가항력적인 힘(혹은 대상)과 맞부딪혔을 때 느끼는 일종의 ‘숭고’의 감정라고나 할까? 예를 들면 나와 반대되는 견해가 매우 논리적으로 쓰였을 때, 내가 그것을 비판하는 방법은 정념적인 것이 될 수밖에 ..
환상의 책 -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죽음과 삶, 끝과 시작, 그리고 생의 완결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흔히들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영혼의 상처를 극복하는 일은 어쩌면 마음 안 쪽 지하실 구석 어디쯤에 그 아픔을 숨겨두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그것은 슬픔이 눈앞에 바로 펼쳐질 듯 생생한 위치로부터 한 계단 한 계단 물러서듯 아래로 옮겨지고 있으나, 마치 영원히 폐기할 수는 없는,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더라도 맘 속 지하실 구석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다시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그 아픔은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 속에서 지우지 않는 한 언제나 그 계단들을 거슬러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그 동기가 무엇이 될지, 또..
아침형 인간 사이쇼 히로시 지음, 최현숙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은 "아침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야간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바뀐 현대인의 생활모습을 주로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자연과 육체의 섭리와 리듬대로 생활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가장 좋다라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갖가지 과학적 혹은 의학적 논리와, 주로 저자의 치료활동에서 나타난 실례들을 보여준다. 2장,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에서는 1장에서 주장했던 야행성 생활의 폐해를 바탕으로 아침을 되찾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가늠하기에 중요한 기본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 주변의 실례를 주로 들면서 '아침형 인간'은 건강뿐 아니라 성공과도 밀접한 관련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