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본 것은 고등학생이 다 돼서였다. 어린 시절이라고 하기엔 머리가 너무 컸던 그때에도 사쯔키와 메이, 그리고 세 마리의 토토로가 벌이는 소박하지만 환상적인 이야기에 넋을 놓았다. 지금은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사실 그 이전에도 을 꼬박꼬박 챙겨보던 내 모습만은 잔상으로 남아있다. 그 외에 그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받아들이며 성장해온 내 또래 세대들은 그의 이름이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현재 대중적인 인지도 면에서 가장 유력한 애니메이션 작가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꼽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그의 작품세계에 동화되지 못한 이들이라도 말이다. 나는 지금도 미야자키 하야오, 혹은 지브리의 신작들을 여전히 고대하고 있다. 키리도시 리사쿠의 은 이 애..
살고 있는 방 안은 지저분한데 이런 것의 깔끔함엔 집착하는 이 괴상한 양면성. 뭔고 하니 블로그에 글 올리는 형식의 통일성 같은 것 말이다. 그 중에서도 카테고리의 목록을 클릭하여 글의 제목들이 같은 형식으로 쭈르륵 나열되는 것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 일종의 변태라면 변태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의식할 때마다 항상 막다른 곳에 다다르게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글의 제목. 블로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때부터 감상글에 속하는 포스팅에 있어서는 일정한 형식의 제목을 달아왔는데, 거기엔 대상에 대한 감상을 내 느낌대로 뭉뚱그린 소제목들을 달거나 혹은 달지 않았다. 이를테면 영화 에 대한 글에선, 영화가 캐릭터의 희귀성에 집착한 나머지 쓸데없는 등장인물까지 만들어낸 것 같다는 내 느낌을 요약하여 ‘캐릭터에 모..
영화 속 록키는 실제의 스탤론과 정확히 일치한다. 왕년의 챔피언에서 조그만 식당 경영자로 살아가는 노년의 록키 발보아는 최고의 액션스타에서 이제는 자신의 주 무대를 찾기도 힘든 실베스터 스탤론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록키의 대사는 의 감독, 각본, 주연을 모두 해치운 이 노장배우의 마음 속 울림 같다. 록키는 자신 안에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이든 권투선수가 새파란 챔피언(안토니오 타버)과 맞붙어 획득한 것은 승리도 패배도 아니고 스스로의 존재감이다. 추억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이 주인공은 과거 안의 자신이 아닌 현재의 자신을 찾고 싶었나 보다. 그가 경기를 끝낸 후 친구 폴리(버트 영)에게 그 맺힌 뭔가가 풀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은 지금 생생하게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댄 에반스(크리스찬 베일)는 남북전쟁으로 다리를 다친 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비스비 마을 근처에서 조그만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에반스는 그의 땅을 철도회사에 팔아 넘길 속셈을 가진 홀랜더(레니 로프틴)에게 진 빚조차 제대로 갚지 못할 만큼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다. 더구나 목장으로 들어오는 수로까지 가로채버린 그에게 이제 모든 것을 빼앗길 판이다. 한편 악명 높은 총잡이인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와 그의 부하들은 댄 에반스의 소들을 이용해 비스비로 들어오는 철도회사 용병들의 마차를 탈취한다. 이 와중에 그는 댄과 만나고, 그에게 말을 빌려주면 마차를 세우는 데 쓴 소들을 돌려주겠다 제안한다. 보안관 일행을 가볍게 따돌리고 비스비 마을에 도착한 웨..
이안의 최고작이라 일컬어지는 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영화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의 영화들에 ‘깊이’ 공감하거나 ‘커다란’ 매력을 느껴 본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나마 과 정도를 재미있게 본 것 같고, 제작규모의 크기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 보였던 , 정작 영화보다 해석(주변에서 해준 것이든 감독 스스로가 풀어낸 것이든 간에)이 더욱 풍부하지 않았나 생각되는 등, 이후 이안의 영화들은 어딘가 모르게 가깝지 않은 느낌이다. 중화권에서 제작되었던 그의 초기작들을 제외한다면 이처럼 ‘글로벌’한 아시아계 영화작가가 또 있을까 싶은 이안의 필모그래피는 확실히 인상적이지만, 내겐 그것이 ‘소재와 인식의 세계화’ 이외에 어떤 의미도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의 앞부분에는 ‘허영만 만화창작 30주년 기념 헌정 평론집’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스스로가 밝힌 ‘평론집’에 가깝다기 보다는 만화작가 허영만과 그의 작품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풀어내는 쪽에 가깝다. 위의 문구 바로 밑에는 “이 책을 만화가 허영만과 그의 만화에 바칩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다. 허영만을 만화사적이나 작품의 사회맥락의 관점에서 파헤치는 시각은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애초에 ‘헌정’이라는 단어로 수식된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가급적 객관적 시각으로 표현되길 원하는(비록 그것이 읽는 이의 헛된 바람일지라도) ‘평론’이라는 단어로는 이 책을 설명하기 힘들다. 예컨대 ‘작가론’이라 분류되어 있는 첫 번째 챕터에서 허영만의 작품 세계를 좀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