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삶을 영화로 재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인 것 같다. 첫째는 그의 생애가 오로지 성공으로만 점철된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하면서도 비극적인 좌절을 함께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아티스트를 재현하는 주연배우의 높은 연기력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전자야 한 사람의 일생을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재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요소인 것이 분명하고, 후자는 그런 주인공의 실제 삶과 영화적 허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반드시 따라와야 하는 부분이다. 즉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배우의 연기력에 따라 관객이 영화적으로 재현된 그의 인생에 기꺼이 동참하여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디뜨 삐아프의 삶의 굴곡을 훑는 는 주연배우인 마리온 꼬띠아르에게 너무나 많은 빚..
내게 라틴 아메리카의 작가는 아직까지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문학의 중요한 지점들은 온통 백인 중심의 영미, 유럽계 작가들이 차지하고 있으니, 독서량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남미의 작가들까지 챙겨본다는 것이 그리 수월친 않다. 지금 현재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미국, 유럽중심의 철학과 생활패턴임을 상기해볼 때 그 사실은 더욱 그렇다. 몇몇 유명한 작가들을 제외한다면 에콰도르나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작가들을 언제 찾아보고 떠올려 보겠는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은 이렇게 문학적인 미지의 세계(철저히 개인의 부족한 경험에 의한 판단이지만)였던 라틴 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칠레 출신의 루이스 세풀베다라는 작가를 나에게 알려준 소설이다. 농부 출신으로 아마존의 수아르 족의 생활터전으로 이민한 ..
어쩐지 영화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대개 이런 식으로 정해진 듯하다. 여성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고유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은 이제 보기 드문 일이 아님에도 영화 속 커리어 우먼들은 항상 어딘가 괴팍하거나 신경질적이며, 결정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남성들에게 적대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의 케이트도 부주방장으로 들어온 닉(아론 에커트)이 자신을 내몰고 주방장 자리를 꿰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멜로드라마의 공식은 이 둘을 사회적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여기엔 향기가 스크린을 넘어 전해질 듯한 멋진 음식들이 한 몫 거들고 있다. 는 최고의 자리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소재에서 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영화만큼 현실적이고도 냉정한 결론..
추리소설은 언제나 한가지 감상만을 낳는다. 그것은 독자가 등장인물 어디쯤을 방황하다 의혹의 눈길을 둬버린 용의자에 대한 기억이다. 말하자면 밝혀진 범인과 읽는 이가 찍어뒀던 용의자 사이의 차이만이 뚜렷이 남을 뿐이랄까. 그가 범인이었던가? 아니다, 그 사건은 그가 범인이었어. 근데 어떤 사연이 있던 살인사건이었지? 이렇게 추리소설은 우리가 책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몇 가지 기억의 갈래 중 하나만을 남겨둔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여운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은 재미있다. 인륜을 거스르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미지의 범인을 향한 두근거림, 그리고 실제범인과 상상의 용의자가 일치할 때의 쾌감이 추리소설을 읽는 흥미를 돋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는 각자의 어두운 사연을 간직한 10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
Mr. Big이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었다면 아직까지도 라이브의 필수트랙이 될 것이 분명한 ‘Daddy, Brother, Lover, Little Boy’와 ‘To Be With You’만으로도 앨범 [Lean Into It]의 의의는 모두 증명된 셈이다. 이 극단적인 두 트랙은 Mr. Big의 지향점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전자가 비르투오소 집단으로서의 밴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면, 후자는 이들의 연주력과는 별 상관없이 뛰어난 감성의 작곡능력(특히나 슬로템포의 노래들에 있어서)을 여실히 확인시키는 곡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감상을 밝힐 때, Eric Martin의 블루지하면서도 허스키한 보컬, Billy Sheehan과 Paul Gilbert의 장난감 다루는 듯 하는 현 연주, Pat Torpey..
대니 보일의 은 태양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인간을 그린다. 죽어가는 태양으로 생명의 빛을 잃어가는 지구를 위해 쏘아 올려진 이카루스 2호는, 태양의 활동을 재개시킬 거대한 폭탄을 싣고 빛의 진원지를 향해 떠난다. 우주공간에서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영화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리라 기대되는 이 여정은 어두운 미래상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은 때로는 폴 앤더슨의 을, 때로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를 연상시키며, 우주에서의 고립이 가져다 주는 인간적인 공포를 긴장감 있게 풀어낸다. 각자의 역할을 맡은 채 모인 8명의 대원들은 점차 심리적인 압박감에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의 임무가 지구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부담과, 폭탄을 실은 우주선과 자신들 이외엔 이 미지의 공간에 그 어떤 존재도 없으리라는 고..